군에 간 아들에게 쓰는 편지(군 입대 24일 차) -사진(천연염색,감물)|

2010. 9. 7. 11:12글 이야기/군에간 아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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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물들인 천과 민들레 꽃-충남역사박물관에서
군 입대 24일 차 -원에게-


원아 감기는 안 걸렸는지 모르겠구나.
어제 오늘은 바람이 차갑게 느껴지는 걸
이른 아침부터 저녁까지 또는 야간 행군이라도 있으면
얼마나 고생을 할까.
감기 걸리지 않게 조심해야하는데
마침 다른 소대장님께서 안심하도록 안부를 써주셨더구나
감기 걸리지 않도록 잘 보살피겠다고 하셨어.
원이도 깊은 잠 잘 자고 먹는 것 가리지 말고 잘 먹으면
감기쯤 물리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오늘은 초등학생 상대로 국궁 체험을 갖았었다
어린 학생들이 활을 당길 수도 없고 당연히 쏘기는 더욱 어려웠지
한 번, 두 번 할 때마다 손가락이 아파와도 성취감을 갖더라.
그러다 과녁에 관중이라도 하면 함성을 지르며 기뻐하지
처음 활을 잡는 순간 두려움으로 용기마저 없던 아이들이었는데
두 시간 체험교실을 마칠 즘이면 더하자고 난리를 한단다.  

산다는 건 그런 거 같아. 처음이 어려울 뿐이지 하고나면 그리고
여러 번 반복하면 익숙해지고 그 안에서 즐거움을 찾게 되는 거 같지
원이도 지금 군 생활이 모든 게 낯설고 어설프고 고통스러울 수밖에
하루하루 익숙해지면 습관처럼 고된 훈련도 너끈히 해낼 수 있잖아
언제 이토록 힘든 일 한번 해보았던가.  

세상을 살다보면 작은 풀 한 포기에서도 인생을 배우지
오늘도 종일 훈련에 임하면서 많은 것을 깨우고 얻었으리라 생각한다.
원아 고통 없는 결실은 없어 그지?
계절을 바꿔가며 꽃을 피우고 열매 맺는 저 과일나무처럼
원이도 훗날 가을의 넉넉하고 풍성한 수확을 하듯 지금 자신을
농사 짓는 거라 생각하면 될 거야  

오늘 활을 쏘는데도 바람이 어찌나 센지 화살을 밀어 과녁 밖으로
밀쳐내더구나 관중이 목표이기에 바람을 향해 바람을 가르며 날도록
화살을 날리면 화살은 바나나킥처럼 빙 돌아 과녁으로 꽂히지
그 희열감이란 말로 이루 표현하지 못할 정도란다
비오는 날에는 비를 가르고 바람 불면 바람도 가르고 눈이 내리면
눈을 뚫고 화살은 날아가……. 그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지
맞서 싸워야 하고 그 안에서 방법을 터득해야하지
경험을 쌓는 거야. 지금 원이가 하루하루 버티어 내는 이 시간들이
훗날 경험으로 누적되어 사회든 현실이든 잘 적응하리라 믿는다.  

원아 내일도 엄만 새벽부터 나가야해.
자러 갈게 원이도 잘 자고 감기라도 걸렸다면 소대장님과 중대장님께
말씀드려 약이라도 지어 먹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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