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미숙 포토에세이[노년의 사진가 그리고 황혼]

2010. 9. 24. 21:32글 이야기/포토포엠.포토에세이

반응형


호미숙 포토에세이[노년의 사진가 그리고 황혼]

 -사진을 클릭하시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퇴근 길.
자전거를 타고 달리다가
저녁 하늘에서 펼치는
황홀한 풍경에 올림픽 대교가
바라다 보이는 곳으로 달려갑니다  

  서녘해를 품어 안고 달리는 라이더
가을 저녁의 주인공이 된 줄도 모르고 있을 겁니다
멋진 사진을 만들어 주신 분께 감사드립니다

 저녁 강변을 산책하고 있던 수녀님의
회색빛 의상에도 붉은 물을 들입니다
평화롭고 고즈넉한 가을 저녁입니다

 물폭탄을 터뜨린 며칠 전의 얄궂은 하늘은
아직 가라앉지 않은 흙탕물을
마른 스펀지로 묻혀 내듯
구름에 붉음이 번져나갑니다

 오늘도 자전거가 있어 황홀한 노을을 만났습니다
새 자전거의 펑크로
오래된 노랭이 사브 자전거로 대신 나간
저녁노을 마중

 나보다 먼저 도착한
한 사진가
삼각대 세워놓고 올림픽대교 쪽의
황금빛을 응시하고 있습니다 

 작은 카메라이지만 흔들림 없이
사진을 담고자 이렇게 삼각대 위에 놓았습니다
그리고 서녘의 붉은 황혼빛이
노신사의 얼굴에 반사되어
어르신 얼굴에도 노을로 물이 들었습니다

 얼마나 집중을 하셨는지
사람이 다가가도 인기척도 못 느끼실 정도로
사진 담기에 몰두하고 계신 표정에
조용히 서서 바라만 보면서
제 사진의 초점의 주인공이 되셨습니다 

 올해 연세 77세
공직 생활하는 동안
필름카메라로 시작한 사진 취미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건강의 비결이라고 말씀을 덧붙입니다

어르신께서 잠시 제 카메라로 저를 담아 주셨네요
사진을 찍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자신의 사진이 거의 없는 편이지요?
그 마음을 아시는 듯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평소보다 훨씬 보기 좋게 나왔네요 ㅎㅎ

 같은 소니 사용자라면서 제 사진기도 살펴주시고
노을이 질 무렵 가장 좋은 포인트라고 귀띔도 해주십니다
해가 완전히 지고 올림픽 대교와 천호대교에 조명이
들어올 때 가장 멋진 작품이 나온다고 알려주십니다

어제 저녁 노을은 훨씬 붉었다고 하시면서
오늘은 어제만 못하다고
구름을 아래위로 다 나오게 반영을 찍으면
더욱 멋지다고 알려주십니다

한 대의 헬리콥터가
붉은 구름 속으로 들어서자
마치 포화 속으로 뛰어든 전투기 같았습니다 

 불이 붙어버린 도시의 빌딩 상공
두려움이 아니고 공포의 대상이 아닌 불덩이
엊그제의 위협적으로 휘몰아친 태풍도
쏟아 붓고 휩쓸고 간 물폭탄도
저 하늘의 조화입니다

깊은 주름과 얼굴에는 거뭇한 반점이 있었지만
어르신의 사진을 담고자 하는 열정은
나이는 무관하기만 했습니다
짧은 시간 함께 한강의 노을을 담으면서
말보다 표정에서 보여주시는
사진가의 진지함과 행복한 노후를 엿보았습니다

 요즘 많은 분들이 사진을 취미로 하고 있지요
이전처럼 비용이 드는 필름카메라가 아니기에
부담 없이 사진을 즐기는 것 같습니다 

어르신의 모습을 담으면서
수십 년 전에도 지금처럼 이런 열정으로
피사체를 뚫어져라 보셨을 것을 상상해봅니다
훗날
나도 누군가에게 열정의 삶을 살고 있음에
느낌과 감동을 전해 줄 수 있는
노년이길 바래봅니다

붉은 불덩이가
도심의 빌딩 너머로 사라지자
저녁 강은 다시 짙게 어둠을 펼치고
허리를 굽혀 강물을 굽어보던
억새가 휘휘,
탁해진 강물을 젓고 있습니다
내일은 맑은 강물이 유유히 흐르길 바라면서

이 글이 유익하셨나요?
추천을 해주시면 저에게 큰 힘이 된답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