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에 고함-국궁(전통활)과 인연, 그리고 석호정과 남산르네상스(공청회)

2011. 1. 19. 05:50문화생활 이야기/국궁(전통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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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 제시버그와 함께-조선일보 2010년 6월 기사



국궁(전통활)과 인연, 그리고 석호정과 남산르네상스 호미숙

 

중학시절 우연히 입문하게 된 활(양궁) 그때만 해도 활에 대하여 일반인들에게 별로 인식되지 않았던 시절. 남녀공학인 충남연기군 금남면 위치한(금호중학교) 2학년 때, 궁도가 뭔지도 모르고 선뜻 특별활동의 궁도부에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고, 시골에서는 그 시절 운동선수는 솔직히 부모님들이 거의 반대를 했기에 그냥 특별활동만으로 생각하고 시작하게 되었는데, 활과의 인연은 평생 내 삶의 동반자가 될 것이라고 조금도 예견하지 못했다. 

배운지 채 3개월도 안되었을 때, 난 이미 궁도에 빠져들었고 한 소년에게 마음도 빼앗기게 되었다. 사춘기의 풋풋한 마음 그리고 양궁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으로 궁도와 공부를 병행하기 위해 부모님께는 절대 비밀로 하였었다. 그렇게 3개월이 지날 무렵 대전에서 개최되는 소년체전에 참가하는 첫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그때 “활의 신동“ 소리까지 들을 정도로 실력이 있었지만, 결국 2박3일의 일정으로 대회 참석은 내 양궁의 처음이자 마지막 경기가 되고 말았다. 눈썹 짙고 싱그러운 미소의 소년에 반한 소녀는 활을 더욱 열심히 했기에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하지만 활도 사춘기 사랑도 그렇게 끝내야 하는가 생각했다. 대회에 참여했던 것을 부모님이 알게 되었고 급기야 부모님은 학교까지 찾아와 교장선생님께 항의를 했으며 결국 활은 3개월로써 마쳐야만 했다.  

그 후, 활은 쏘지 못했어도 소년과는 계속 이어져 사랑을 싹틔우고 첫사랑은 결혼까지 하게 되었으나 내 안의 활에 대한 열정은 식지 않은 채 안에서, 안에서 용솟음 치고 있었음을 훗날 아이 둘을 낳고 드디어 34살에 양궁이 아닌 국궁을 선택해서 부부가 된 두 소년. 소녀는 함께 배우려 해서 국궁장을 찾아갔다. 하지만 그것마저 실행 할 수 없었으니 활에 대한 미련만 자꾸만 키워가게 되었다. 

젊디젊은 나이 34살에 뜻하지 않는 청천벽력과 같은 남편과의 사별, 세상에 덩그러니 놓인 두 아들과 나, 삶의 전선에서 뛰어야만 했다. 슬픔을 이겨내기보다 생활이 먼저였다. 그렇게 2년이 흐른 뒤 36살에 어느 정도 안정을 찾을 무렵 꿈에도 잊지 못할 활을 다시 접하게 되었다. 

1997년 남산 석호정에서 국궁을 다시 시작하면서 또 다른 삶의 희열을 맛보기 시작했다. 평생의 소원이던 활, 활은 내게 있어 명상이었고 묵상이었으며 기도였었다. 두 아들과의 생활에도 나를 지켜낼 수 있던 것은 바로 국궁(전통활)이었다. 전국대회를 참여하게 되고 각종 대회에서 전국 우승을 비롯하여 좋은 성적을 거두면서 활과의 사랑은 우연이 아닌 필연으로 생각했다. 그렇게 활과의 인연은 내 삶의 있어 하나의 지표가 되었다. 남편과 하지 못하는 활을 대신 두 배로 할 것을 다짐하고 누구보다 열심히 활을 쐈다. 

두 아들의 학업 뒷바라지에 직장 생활까지 병행하면서도 이른 새벽 여명이 걷히지 않은 시간에 활터를 찾아 연습하고 대회도 겨우 방학 때 주말이나 가능 했다. 그렇게 활동하면서 전국재패도 하고 좋은 성적으로 입상을 할 때마다 아이들에게 상패와 상장을 보여줬다. 사춘기가 된 두 아들에게 말보다 보여줄 것이 바로 결과물이라고 생각해서였다. 아버지가 없는 사춘기를 어렵게 보냈던 두 아들들이 엄마의 마음을 알아 줘서일까 스스로 달라지는 모습에 아이들에게 고맙고 국궁에 애착을 더욱 갖았다. 

연합뉴스 2007년 4월 기사-어린이 국궁교실


직장을 그만두고 석호정에서 운영한 어린이 궁도교실 사범활동을 하면서 아이들에게 활을 가르치고 활로써 새롭게 삶을 펼치려 할 즈음 뜻밖의 난관이 부딪혔다. 서울시와 석호정의 갈등이 빚어지게 되었고 결국 서울시는 석호정을 다른 곳에 옮긴다는 결정과 함께 운영체제도 바뀌게 되었고 어린이 사범을 마저 내려놓고 지금은 서울시와 법정 투쟁 상황까지 와있는 상태다.  

자전거를 타고 천호동에서 남산 석호정을 출퇴근 하면서 카메라 들고 서울의 아름다운 모습을 담았다. 지금은 활은 제대로 활동 못하면서도 자전거와 인연이 되어 여행을 즐기며 사진을 담는다. 여전히 활에 대한 꿈은 가슴 안에 묻은 채, 석호정이 제자리 찾는 순간 다시 석호정을 찾아 활을 당기고 아이들과 멋진 활의 인생을 꿈꾼다. 

3년 전부터 온라인(블로그)으로 석호정의 위기를 알리며 고군분투 했었으나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지만 요즘 소셜 네트워크인 facebook이나 twitter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석호정의 문제를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동참해주신 분들께 너무도 감사드린다. 

2011년 1월 20일 중구청 주최로 충무아트홀에서 “석호정과 남산 르네상스 공존 방안 모색“ 공청회가 열린다. 이날 오전 일찍 어린이 국궁교실을 특별히 열어 KBS 취재를 하게 된다. 이 교실이 마지막이 아니고 또 다른 시작이라 생각하고 임하려한다. 서울시와 석호정 간의 원만한 해결로 다시 아이들에게 활을 가르치고 싶다. 최초의 민간 활터인 석호정, 양궁의 산파역할의 석호정은 전통문화 유산의 가치로 인정받길 소망하며, 또다시 활과의 인연으로 평생을 활과 자전거와 함께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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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T @blackmt1: 남산에 국궁장인 석호정이 지금 남산 르네상스 계획에 따라 철거 위기에 처해있나봅니다. 그에 관한 공청회가 중구청 주최로 1/20 열린다고 하니 관심있는 분들의 많은 참여를. http://homihomi...
  • RT @coreakck: 최초의 민간 활터 국궁장인 석호정이 사라질 위험에 처해있습니다. 380년 된 석호정 활터를 지켜내기 위해서 전국의 궁도 동호인과 석호정 회원들과 서울시 의회까지 나서고 있으나 독불장군 오세훈...
    일본군군관터는 문화재라고 만들어두면서 석호정은 없애나??? | 트위터 | 3일전, 오후 2:48 (일) | sr5492p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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