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미숙 포토에세이[낙엽을 쓸던 아저씨와 가을이야기]

2010. 11. 23. 07:41글 이야기/포토포엠.포토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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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미숙 포토에세이[낙엽을 쓸던 아저씨와 가을이야기]



여의도 윤중로 벚나무 길
나부낀 붉은 가을을 쓱~쓱~

거친 빗자루로 가을 길을 쓸어내던
아저씨의 운동화를 언뜻 보았습니다.

운동화 뒤아서 입을 벌린 모습에
말을 붙일까 말까 공연히 민폐라도 될까봐 고민합니다.

아저씨께서 쓸어야할 길은 얼마나 넓은지
보는 사람이야 아름답다고 감탄사 연발과 함께
카메라 셔터 누르기 바쁘지만

하루 종일 쓸어도, 쓸어도
표시도 나지 않는 작업을 계속해야 하는 아저씨

일하는데 지장이라도 줄까봐
또는 마음의 상처라도 드릴까봐
발치에서 셔터소리마저 조용히 눌러봅니다.

10여 분이 지나도록 말을 건네지 못하고 있다가
용기를 내어 다가갔습니다.

아저씨, 낙엽을 꼭 쓸어야 하나요?
바람이 불면 또 떨어질 텐데요?
그냥 두면 자주 쓸지 않아도 되고 길에 낙엽이 뒹구니까 너무 아름답고
사람들에게 낙엽 밟는 추억 만들기에 좋잖아요?
가을이 지나고 한꺼번에 싹 치우면 안 되는 건가요?

아저씨 대답을 듣기도 전에 생각했던 말부터 뱉어 버렸습니다.

그 때, 저를 바라보던 눈빛이 선한 아저씨께서는 싱긋이 웃으시며
"저도 낙엽이 이렇게 쌓여서 많은 사람들에게 밟히는 즐거움을 주면 좋겠지만
사실 이 낙엽이 바싹 마르면 바로 먼지를 일으키니 어쩔 수 없이 매일 시간 날 때마다 쓸어야 하는 거랍니다"
라고 하십니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대답에 잠깐 무안함을 느꼈습니다.
구경하는 사람들도 좋은 것이라 생각하고
하시는 일이 고되 보이고 나름 배려하는 마음이라  짧은 생각을 말했건만
오히려 제 상식이 부족했음을 깨닫고 말았습니다.

인상이 너무 좋았던 아저씨
길을 쓸고 있었지만 그 일을 오랫동안 하시지 않았을 거란 느낌에
어떻게 이 일을 하시게 되었는지 여쭈었습니다.
공무원으로 정퇴임 후, 어찌어찌하다보니 하게 되었다면서
4년 차라고 말씀해주십니다.

발치에서 허락 없이 사진을 찍었는데 괜찮은지 여쭈니
이런 모습을 찍어서 뭣하냐고 되묻습니다.

붉은 가을 색을 쓸어내는 모습이 멋지다고 말씀드리며
포즈 한 번 부탁해도 되냐고 말씀드리니
약간 머쓱한 표정으로 그러라고 하시데요.

대화를 나누는 짧은 시간에도 쉴 새 없이
빗질을 계속 하시던 아저씨는 빗자루를 어깨에 메고 
다시 단풍 아래 수북이 쌓인 가을풍경 속으로 방향을 바꾸십니다.


친구와 약속했던 터라 친구에게 길을 안내해야 하는데 설명을 못하니
아저씨께서 직접 전화를 받아 자세히 알려주셨습니다.
그리고 금방 도착한 친구를 만나 자리를 뜨면서 왠지 아쉬움 같은 것이 남았습니다.
감사하다고 말씀을 드렸지만, 시간이 넉넉했더라면 저도 함께 가을 길을 쓸어 드렸을 텐데 말입니다.

봄이면 벚꽃이 휘날려 꽃비가 떨어져 쓸어야 하고
여름은 빗물이 고일까봐 쓸어야하고
가을은 나뒹구는 낙엽을 쓸어야하고
겨울은 쌓인 눈을 쓸어야 하는 아저씨 삶의 무게를 느낍니다.
그래도 일을 즐겁게 하시며 반갑게 웃어주던 모습에 감사드립니다.

가을풍경을 담으며-homhomi

원본주소-http://homihomi.tistory.com/424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는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리며 추천 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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