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미숙 자전거여행-화왕산[우포늪을 떠나 도성암,창화사,석불좌상,송현리고분-화왕산맛집 민속마당]

2013. 7. 25. 08:56자전거 이야기/자전거랑(~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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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왕산 도성암

 

창녕화왕산[도성암,창화사,석불좌상,송현리고분-화왕산맛집 민속마당] 호미숙

 

창녕 우포늪-화왕산-창원주남저수지 여행기 모음

우포늪-신비의 숲, 환상 노을과 아침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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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화왕산[도성암,창화사,석불좌상,송현리고분-화왕산맛집 민속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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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포늪에서 창녕의 자전거 탄 일행들의 안내로 창녕 화왕산쪽으로 이동해서

창녕 석빙고와 창녕 만옥정공원, 화왕산 민속마당 한정식과 화왕산 도성암,

화왕산 창화사, 교동.송현리 고분과 석불좌상 등 화왕산 주변 명소들을 소개합니다.

 

이쪽은 기본이 오르막 코스여서 제대로 자전거로 업힐 연습 하는 하루였습니다. 하하하

 

우포늪의 아침 풍경을 담고 우연히 만난 창녕의 자전거 탄 일행인 김삼수님의 안내를 받아

지름길을 이용해 30분 남짓 걸려서 화왕산이 가까운 직교마을에서 일행들과 헤어져

마을 풍경을 담아 천천히 화왕산 쪽으로 핸들을 돌립니다.

 

창녕 석빙고

 

창녕 석빙고

창녕군 명덕초등학교 맞은편 도로변에 언덕처럼 보이는 것이 이 석빙고다. 석빙고는 얼음을 저장해 두기 위해 돌을 쌓아 만든 창고로, 주로 강이나 개울 주변에 만들어진다. 서쪽으로 흐르는 개울과 직각이 되도록 남북으로 길게 위치하고 있으며, 입구를 남쪽으로 내어 얼음을 쉽게 옮길 수 있도록 하였다.

 

이 석빙고는 입구에 서 있는 비석의 기록을 통해 조선 영조 18년(1742) 당시 이곳의 현감이었던 신후서(申侯曙)에 의해 세워졌다는 것을 알수 있다. 각 부 양식 또한 조선 후기의 모습이 잘 담겨져 있어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만옥정공원

만옥정공원은 창녕공원이라고도 한다. 봄철의 벚꽃 장관이라고 한다. 이날 들렀을 때 벗나무 한 그루가 멋스럽게 굽어 반겼다. 이곳에는 약 250년 전에 만옥정이라는 정자가 있었다고 하는데, 당시에는 봄마다 명창(名唱) 대회와 그네뛰기 대회가 열렸다고 전해진다. 

 

창녕지구 전승비( UN 전적비)

한국전쟁 중이던 1950년 8월 7일 함양과 거창을 점령한 북한군은 이 곳 창녕과 현풍을 탈취한 후 대구를 포위 공격하려는 계획으로 낙동강 돌출부인 남지읍 박진나루, 오향나루 유어면 부곡리를 건너 교두보를 확보하기 위하여 계속적인 공격을 가했으나 미군 제 24사단 및 제2사단의 치열한 역습으로 적의 기도를 좌절시켰다. 특히 8월 13일 6회에 걸친 적의 발악적인 공격을 저지하고 9월 15일까지 일진일퇴의 혈투를 한 달 이상 계속하여 북한군 3개 사단의 큰 병력을 섬멸했다. 조국수호의 마지막 보루였던 낙동강 방어선을 사수하고 UN군의 인천상륙 작전과 아군의 총 반격으로 북진의 기틀을 마련한 이 불후의 공훈을 길이 빛내는 동시에 그 영령을 위로 하고자 1959년 3월 31일 건립

 

신라진흥왕척경비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비인 신라진흥왕척경비(新羅眞興王拓境碑:국보 33)가 있는데, 561년(진흥왕 22)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원래 창녕읍 화왕산록(火旺山麓)에 있던 것을 1924년에 이곳으로 옮겨왔다.

 

화왕산으로 향하는 길에 정겨운 골목길 풍경을 사진에 담고

화왕산을 뒤로 하고 작은 저수지를 따라 화왕산으로 Go~

 

창녕의 화왕산 맛집으로 유명한 "화왕산 민속마당" 한정식

 

화왕산 민속마당 한정식

블로그: http://blog.daum.net/minsogmadang 
경남 창녕군 창녕읍 말흘리 30
전화)055-532-7778

 

창녕 우포늪과 화왕산을 여행한다고 하니 지인이 반드시 들러보라고 했던

화왕산 맛집인 화왕산 민속마당 한정식

성호철 대표 부부가 서울서 자전거 타고 왔다며 얼마나 반기시는지

정자에 쉬어 차도 마시며 한참을 머물며 이야기꽃을 피웠습니다.

 

원래는 산채비빔밥을 운영했었는데 민속마당 내부를 리모델링 하면서

한정식으로 매뉴를 바꾸었다고 하네요.

 

특히 주방을 맡고 있는 사모님 고향이 지리산 청학동이라서

모든 산채나물은 친정에서 공수 받아 사용하고

특히 장류는 직접 담그고 효소를 만들어 조미료 없이 사용한다고 합니다.

 

이른 시간이라 오픈하려면 시간이 멀어 휴식을 취하며 민속마당 주인이

취미로 하고 있는 조경 분재와 전통 민속제품과

우리의 옛것들을 사진으로 담으며 오래된 유년의 추억을 떠올려 봤네요.

정말 다양한 우리 것들이 전시 되어 있어 사진에 모두 담았습니다.

화왕산 민속마당은 다시 소개할 거에요.

 

화왕산을 정상까지 오르려면 3시간 이상 걸린다고 해서 아침을 식구들이 먹는 식탁에 앉아 함께 먹고 가까운 도성암까지만 들러보기로 하고 다시 길을 나섭니다.

 

 

화왕산 도성암을 향해

화왕산 민속마당을 옆에 끼고 오르면 가파른 길을 올라 1.5km 지점에 도성암이 위치해있는데,

민속마당 사장님은 가끔 자전거 타고 오르는 사람들 봤지만 무척 힘들꺼라며

겁을 주어서 걸어서 다녀올까 하다가 호미 아줌마 용기를 내어 자전거 타고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첫 입구부터 숨차게 오르자 약간 밋밋한 경사가 이어지고 몇 번의 가파름을 가슴 터지도록

숨을 몰아쉬며 오르니 맑은 물소리가 시원하게 흐르는 계속에

발을 담근 가족들이 보이는 곳에서 깔딱고개 수준의 갈림길에서 결국 내려

자전거 끌고 도성암에 도착했습니다.

 

화왕산 도성암

화왕산 도성암 입구 보제루

 

화왕산 도성암-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송현리 8번지

화왕산 기슭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본사인 통도사의 말사. 신라의 고승 지월선사가 810년(신라 현덕왕 2)에 창건하였다고 전해진다고 합니다.  조선시대 임진왜란 때 전소되어 터만 남은 자리에 재건립했답니다. 종각을 겸하고 있는 보제루 누각 아래의 계단을 지나면 경내 중앙에 대웅전이 있고, 대웅전 오른쪽에 칠성각으로 쓰였던 요사채, 그 옆 축대 위에 삼성각이 있습니다.

 

1991년 신축된 대웅전은 정면 3칸·측면 3칸 규모의 팔작지붕집으로, 내부 불단에는 2005년 10월 13일 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437호로 지정된 석조아미타여래좌상(창녕 도성암 석조아미타여래좌상)이 본존불로 모셔져 있는데 호미는 직접 보지 못했습니다.

도성암 경내 풍경들

대웅전을 신축했는지 두 곳에 위치해 있네요.

 

두 채의 대웅전과 보제루 누각

 

화왕산 도성암 경내를 천천히 둘러보며 서산으로 향하는 햇살이 드리운 평화로운 풍경을 담습니다.

 

나리꽃과 삼성각

 

도성암을 다 둘러보고 누각에 올라 화왕산을 액자 속에 담듯이 사진을 담습니다.

 

다시 자전거 타고 내려와야하는데 오를 때 워낙 가파른 길이었기에 일단 잔디 마당에 앉아

화왕산 능선을 타고 넘나드는 구름을 바라보며 한참을 쉽니다.

 

얼마나 지났을까 한참을 머물다 보니 시간이 많이 지체되어 자전거를 끌고

경사진 곳을 걸어 내려와 그 후부터는 손아귀가 아플 정도로

브레이크를 잡으며 화왕산 민속마당 식당에 도착합니다.

 

화왕산 청화사

민속마당에서 물을 마시며 어느 정도 여유를 부리고 마주보이는

송현 고분과 청화사를 들르려 다시 자전거 타고 이동합니다.

이쪽은 이동했다하면 기본 오르막 내리막입니다 ㅎㅎ

 

화왕산 능선이 부드러운 곡선으로 드리운 곳에 청화사가 자리 잡았는데요.

건립 된지 얼마 안 된 듯한 사찰입니다.

 

화왕산 창화사

화왕산(火旺山, 756m)군립공원 자하곡 입구에서 등산로 쪽으로 약 450m 떨어져 있고, 대한불교 천태종 사찰로, 2002년 10월에 낙성식(落成式)을 한 2층 주심포(柱心包)식 불전이다.

 

창화사에서 내려다본 창녕읍내 풍경을 담고 사찰 뒤 쪽에서 담은 화왕산

 

창녕 송현동 석불좌상(보물제75호)

창녕송현동 석불좌상(보물제75호)

큰 바위에 앞면을 돌출되게 조각한 마애불(磨崖佛)로(보물75호) 바위 자체를 몸 전체에서 나오는 빛을 형상화한 광배(光背)로 이용하고 있다.

 

민머리에는 상투 모양의 큼직한 머리(육계)가 있으며, 둥근 얼굴에는 살이 통통하게 올라 온화한 인상을 풍긴다. 어깨는 넓게 떡 벌어져 있고, 팔과 가슴은 넓고 풍만하지만 크기에 비해 어딘지 힘이 빠진 듯한 느낌이다. 왼쪽 어깨를 감싸고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면서 입은 옷은 얇게 신체에 밀착되었는데, 형식적으로 처리된 계단식의 옷주름 때문에 사실성이 떨어진다. 손모양은 오른손을 무릎 위에 올리고 손끝이 땅을 향한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으로 악귀를 물리친다는 의미를 지닌다. 

 

대체로 이 석불은 얼굴이나 얇게 밀착된 옷 등에서 석굴암 본존불 계열의 양식을 이어받은 작품으로 보이지만, 석굴암 불상보다는 사실성이 줄어들고 힘이 빠져 통일신라 후기 불상의 양식을 보여준다.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

창녕읍 교리 및 송현리 일대에 넓게 분포하고 있는 대형 고분군으로 1911년 일본인 학자 세키노 타타시에 의해 처음 알려졌다. 1917년 분포조사를 시작으로 1918년 1919년에 걸쳐 11기의 고분이 발굴. 조사 되었으나 제21호 31호분을 제외하고는 보고서가 간행되지 않았으며, 조사자에 따라 고분 번호를 달리하는 등의 요인으로 인해 조사된 고분이 어느고 분인지 정확하게 구분하기조차 어렵다.

 

이 시기 조사를 통해 마차 20여대와 화차 20량 분의 토기와 금동품들이 출토 되었다고 전해지나 현재 국립중앙박물관과 일본 도쿄 국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일부 유물을 제회하고는 소재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 확인된 자료를 통해 보면 금동관, 금.은장신구. 은 관장식, 금동관모, 금귀걸이 등의 장신구와 각종 마구류와 각종 토기류와 목기류가 출토되었다. 출토유물의 양상과 고분구조를 볼 때 5~6세기 전반에 중심연대가 되는 고분군으로 추정되고 있다.

 

고분군은 당초 행정구역에 따라서 사적 제 80호로 창녕 교동고분군과 사적 제81호 창녕 송현동고분군으로 나누어져있었으나, 동일 성격의 유적으로 판단되어 2011년 7월에 사적 제 514호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으로 통합되었다.

 

해가 질 때까지는 어느 정도 기다려야 하기에

고분군 잔디에 누워 흘러가는 구름을 보며 유년에 했던 것처럼

구름빚기하며 유유자적 시간을 보내고 뉘엿뉘엿 지는 해를 담으려니

이 쪽에서는 정면이 아니어서 자리를 이동해봅니다.

 

다시 화왕산 입구인 화왕산민속마당을 지나 맞은편 과수원으로 자리를 옮기려는데

아뿔싸.. 농원 입구에 들어갈 수 없도록 전기책을 쳐두고 진입금지를 시키고 있었네요.

결국 창녕의 멋진 노을을 담지 못하고 아래까지 내려가 큰길에서 노을을 담으려해도

상황이 여의치 않아 민속마당 앞에서 아쉬운 해넘이를 담았습니다.

이날 제대로 자전거 업힐 연습 했습니다. ㅎㅎㅎ

 

이날 화왕산 민속마당 한정식에서 진수성찬을 따로 대접 받았는데

화왕산 맛집으로 다시 소개하려고 합니다.

 

다음 여행지는 창녕에서 하룻밤을 묵고

창원의 주남저수지와 연꽃공원의 풍경을 담고 서울로 귀경하는 길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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