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여행]덕수궁(중화전, 석어당, 함녕전, 덕홍전, 정관헌) 한국의 미, 덕수궁 돌담길

2013. 2. 6. 09:38여행 이야기/국내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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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 돌담길

 

[서울여행]덕수궁(중화전, 석어당, 함녕전, 덕홍전, 정관헌) 한국의 미, 덕수궁 돌담길 호미숙

 

입춘에 대설이 내린 다음 날, 2013. 2. 5, 광화문에 일이있어 덕수궁을 찾았습니다.

해외 관광객들이 찾는 4대 궁궐의 하나인 덕수궁

 

특히 고궁의 설경을 담고 싶은 마음이 앞서 덕수궁 돌담길을 돌아

대한문을 들어서서 중화문과 중화전의 문살과 문양을

즉조당 일원의 석어당의 오래된 목조의 옹이를

함녕전과 덕홍전의 아름다운 우리나라 단청을

정관헌의 전통 건축과 서양 건축의 조화를

카메라 앵글에 담으며 긴 시간 느낌의 산책으로 둘러보았습니다.

 

덕수궁: 서울특별시 중구 세종대로 99 (정동 5-1)

1963년 1월 18일 사적 제124호로 지정되었고. 원래 명칭은 경운궁(慶運宮)이지만, 1907년 고종이 순종에게 양위를 한 뒤 이곳에 살면서 덕수궁(德壽宮)으로 바꾸었다.  

현재 덕수궁의 자리는 본래 세조(世祖)의 큰아들인 도원군(桃源君: 暲)의 큰아들, 즉 세조의 큰손자인 월산대군(月山大君, 婷)의 개인 저택이었다. 도원군은 세자(世子)로 책봉되었으나 18세에 죽었다. 그래서 세자빈(世子嬪) 한(韓)씨가 출궁(出宮)을 할 때 나라에서 이 집을 지어주고 두 아들과 함께 살게 하였다. 둘째 아들인 잘산군(乽山君)이 성종(成宗)으로 즉위하면서 그의 어머니인 한씨도 입궐하게 되어 월산대군만이 거처하게 되었다.

덕수궁은 중화전 일원, 즉조장 일원, 함년전과 덕홍전,정환헌, 석조전 일원, 궐내각사 터와 환구단, 선원전 터로 구성 되어 있다.

 

현재 대한문(大漢門), 중화문(中和門), 광명문(光明門)이 있으며, 중화전(中和殿), 석어당(昔御堂), 준명당(俊明堂), 즉조당(卽祚堂), 함녕전(咸寧殿), 덕홍전(德弘殿), 석조전(石造殿) 등의 전각이 있다. 조선 시대 궁궐 가운데 가장 규모가 작다.

 

덕수궁 경울풍경과 Newage 음악 영상

 

덕수궁 관람

대한문을 들어서서

 

중화문과 중화전

 

 

 

 

 

 중화문과 중화전:

1985년 1월 8일 보물 제819호로 지정되었다. 중화전은 정면 5칸, 측면 4칸, 단층의 팔작지붕이다.

 

1902년(광무 6) 창건 당시에는 2층 건물이었으나 1904년 화재로 소실되고 1906년 단층으로 중건되었다. 처마는 겹처마이고, 지붕의 각 마루에는 취두(鷲頭)·용두(龍頭)·잡상(雜像)을 놓았으며, 토수(吐首)를 끼웠다. 단청은 모로단청(毛老丹靑:부재의 끝 부분에만 여러 무늬를 놓아 갖가지 색으로 그린 단청)으로 하였고, 광창(光窓)과 문짝에는 소슬 꽃살문을 새겨 짜서 위관(偉觀)을 돋우었다. 중화문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에 5량가구(五樑架構)로 되어 있는 다포계 팔작지붕구조이다.

 

준명당, 즉조당, 석어당

 

준명당:

내전으로 사용된 건물이며 1897년에 건립되었다. 고종(高宗)이 창덕궁(昌德宮)에서 경운궁(현 덕수궁)으로 옮겨갈 때 지어졌으며 1904년 덕수궁에 화재가 일어났을 때 소실되었다가 이듬해 다시 건립되었다. 고종이 정무를 맡아 보던 편전이었으며 침전으로도 사용하였다. 또한 어린 덕혜옹주(德惠翁主)를 위해 유치원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정면 6칸 측면 4칸의 팔작지붕이며 남향이다. 온돌을 깔아 난방시설을 갖추고 있고 정면 3칸은 대청마루로 개방되어있다. 우측의 즉조당(卽阼堂)과 회랑으로 연결되어 있다.

 

즉조당:

임금이 침전으로 사용하였던 건물이다. 경복궁(慶福宮)과 창덕궁(昌德宮)이 화재로 소실되어 머물 곳이 없자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月山大君)이 살았던 집에 거처를 마련한다. 이곳이 훗날 경운궁(현 덕수궁)으로 확장된다. 광해군(光海君)이 이 자리에서 즉위했고, 창덕궁이 완공되어 이궁할 때까지 즉조당(卽阼堂)에서 머물렀다. 즉조당에서 인조(仁祖)가 등극했고, '즉조당'이라는 명칭은 이때부터 사용되었다. 건물의 구조는 정면 7칸, 측면 4칸의 팔작지붕이며, 좌측에 있는 준명당(浚明堂)과 회랑으로 연결되어 있다.

 

석어당

 

 

 
석어당 

1층 정면 8칸, 측면 3칸, 2층 정면 6칸, 측면 1칸, 중층 팔작지붕 익공(翼工)집이다. 정면에서 보면 8칸 중 가운데 있는 2칸은 툇마루를 깔고 뒷면 역시 쪽마루를 달아내었다. 기둥은 모두 각주(角柱)를 썼으며 두공(枓栱)은 간결한 익공이다. 상층은 퇴량(退樑)과 대량(大樑) 위에 올려 세운 각주로 구성되고 우물마루를 깔았다. 처마는 상하층 모두 겹처마이고, 지붕에는 망와(望瓦) 외에는 아무 장식도 없다. 이 건물은 현존하는 유일한 중층건물이며, 궁전건축이지만 권위주의적인 형식을 벗어나 순수한 재래식 민간건물의 성격을 띠고 있다.

 

궁궐 내를 서로 잇는 문과 길

 

정관헌

 

정관헌:

1900년 대한제국 시절 고종이 다과를 들거나 연회를 열고 음악을 감상하는 등의 목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덕수궁 안에 지은 회랑 건축물이다. 궁 내의 근대 건축물 중 가장 오래되었다. 정면 7칸 측면 5칸의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었으며, 정면과 좌·우측 발코니가 화려하게 꾸며져 있고, 회색과 붉은색 벽돌로 벽면이 다양하게 장식되어 있는 등 화려하고 이색적인 모습이다.

 

 함녕전과 덕홍전

 

 

함녕전:

전각은 고종이 거처하던 곳으로, 임금자리를 순종에게 물려준 후 잠시 수옥헌(漱玉軒)에서 거처하였으나, 순종이 창덕궁으로 옮긴 후 다시 이곳에서 거처하다가 1919년 여기에서 승하하였다.

 

건물은 커다란 기단(基壇) 위에 앉혔고, 집 둘레에는 거느림집[行廊]과 흙벽이 둘려 있다. 집의 평면은 한쪽 뒷면에 4칸이 더 붙여진 ㄱ자형인데, 기둥 사이는 대개 동일하고, 좌우의 한 칸씩만 협간(夾間)처럼 되어 있다. 바른편 끝에는 높직한 돌기둥을 세우고, 기둥 밖으로 툇마루가 달렸는데, 이것이 뒷면으로 이어져 ㄱ자형으로 꺾어져서 난간 끝까지 이르고 있다.

 

 

덕홍전:

덕수궁 중화전(中和殿) 우측(동쪽)에 위치하며 편전(便殿)으로 사용한 건물이다. 고종의 침전으로 사용된 함녕전과 나란히 남향으로 지어졌으며 정무를 맡아보던 곳이다. 1904년 덕수궁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복원되었다. 정면 3칸 측면 4칸의 팔작지붕이며 경복궁과 창덕궁에 지어진 편전과는 다르게 거의 정방형을 갖추고 있는 독특한 모양이다.

 

광화문으로 향하며

도로 원표와 이순진장군 동상과 세종대왕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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