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상사/법정스님]성모 마리아를 닮은 '관음보살상'과 '길상보탑'은 종교적 화해

2013. 3. 6. 11:30여행 이야기/국내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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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상사 극락전

 

[길상사/법정스님]성모 마리아를 닮은 '관음보살상'과 '길상보탑'은 종교적 화해의미 호미숙

 

길상사 역사-‘길상화‘ 김영한(법정스님께 천억원대의 대원각 시주)

공덕주 김영한님의 무소유의 실천으로 지금의 길상사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김영한님은 일제치하, 민족사의 암흑기에 태어나 성장하셨다. 16살 나이에도 한국 전통음악과 가무의 전습을 위해 조선권번을 세워 인재를 양성한 분이다.

중앙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했고 특히 천재 시인 백석과의 사랑으로 ‘백석, 내 가슴 속에 지워지지 않는 이름’, 하규일 선생 약전, ‘내 사랑 백석’ 등을 저술했다. 시인 백석이 ‘자야’란 호를 내렸다고 한다, 또한 청암장이라는 한식당을 운영했는데 3공화국 시절에는 국내 3대 요정의 하나였던 대원각이다.

 

길상화님은 노년에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읽고 감명받아 친견 한 뒤 당시 시가 1,000억원이 넘는 대원각을 시주하며 절을 만들어 달라고 청했다. 그 후 10년에 걸쳐 거듭 청하여 결국 1995년에 뜻을 이뤘다.

 

1997년 12월 14일 대원각이 길상사가 되던 날, 법정스님으로부터 염주 하나와 ‘길상화’라는 법명만 받았고 7천여 평 절터와 전각 모두를 보시하였다. 길상화 그녀의 바람은 오로지 하나,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으로 되어 모두가 고뇌의 마음을 쉴 수 있는 곳으로 거듭나게 하는 것이었다. 그녀가 수천 대중 앞에서 단 두어 마디 한 말은 “저는 죄 많은 여자입니다. 저는 불교를 잘 모릅니다만...” “저기 보이는 저 팔각정은 여인들이 옷을 갈아입는 곳이었습니다. 저의 소원은 저곳에서 맑고 장엄한 범종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입니다.”

1999년 길상화 그녀는 육신의 옷을 벗고 다비 후 유골은 49재 후 유언대로 첫눈이 도량이 순백으로 장엄하던 날 길상헌 뒤쪽 언덕바지에 뿌려졌다고 한다.

후에 김영한님은 마지막 사랑인 백석을 기리기 위해서 [백석문학상을]만들었다.

 

법정스님의 큰 뜻(성모마리아를 닮은 관음보살상) 

 

우리가 늘 보던 그런 관음보살상이 아닌 성모 마리아를 닮았다. 길상사 개산 당시 천주교신자인 최동태 조각가가 만들어 봉안한 석상. 종교간 화해의 염원이 담긴 관음상이다. 

김수환 추기경은 1997년 12월 길상사 개원 법회에 참석해 축사했고, 법정 스님은 98년 2월 명동성당에서 천주교 신자들을 앞에 두고 무소유의 정신으로 외환위기를 이겨내자고 호소했다.  

이 자리에서 법정 스님은 “김 추기경의 넓은 도량에 보답하기 위해 찾아왔다”며 “이런 자리를 마련해주신 인연과 천주님의 뜻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법정 스님은 천주교 신자인 조각가 최종태씨에게 길상사 관음보살상 제작을 맡긴 일화로도 유명하다. 

 

 

 

길상사 템플스테이

주말 선수련회는 한 달에 두 번 진행

불교를 갓 접하신 분이나 여러 가지 참선 경험이 있는 분들 모두 가능

길상사 시민모임 맑고 향기롭게(http://www.kilsangsa.or.kr/)

 

길상사를 둘러보고-법정 스님의 '버리고 떠나기'는 내 삶의 경전

법정 스님의 ‘버리고 떠나기’를 처음 펼쳐 놓고 가슴에 깊이 새기기 위해서 타자로 옮겨 적으며 스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무엇을 버리고 떠나야 하는 지를 고민하고 고민했던 그 때가 떠오른다. 특히 두 아들을 키우는 홀로 된 엄마로써 가장 깊은 슬픔에서 극복하기 위해서 정신적 지주처럼 나만의 삶의 경전으로 삼았던 책이다. 그런 법정스님의 입적 소식을 듣고도 찾아뵙지 못했는데 이번 기회에 길상사를 방문하게 되었다. 길상사 안내판만 보아도 가슴에 밀려드는 통증에 울컥 저 밑에서 무언가가 뜨거움을 느꼈다.

 

그때 ‘버리고 떠나기’를 여러 번 탐독 하면서 스스로 깨우친 것은 바로 지금의 행복이었다. 내일의 미래에 대한 막연한 꿈보다는 지금 이 순간을 즐기고 행복해하는 것으로 결론은 ‘현실 만족’ 이란 명제를 찾았다. 3가족의 현실 만족이란 어렵고도 참 쉬운 것임에도 그것을 알기까지는 오래 걸렸다. 현재의 어려움마저도 감사함으로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그 후부터는 어두운 그림자가 사라지고 늘 미소를 짓게 되고 자주 웃는 모습의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거울 속의 한 여인은 가녀림 보다는 강한 어머니의 온화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래 이것이 바로 행복이고 최선을 다했다면 현실을 만족하자라고 나에게 격려를 해주었다. 그래서 지금도 ‘지금이 행복해야 내일도 행복하다’란 말을 신조처럼 새기면서 ‘자연처럼’, ‘자연스럽게’란 단어를 명심하고 명심한다. 

 

 

길상사 사진으로 꾸민 명상음악 영상

맑고 향기롭게 근본도량 -길상사-

 

일주문

사찰에 들어갈 때 가자 먼저 통과하는 문이다. 최소한 네 개의 기둥이 서야 일정한 면적을 가지는 건물이 이뤄지지만 안팎이 없는 두 개의 기둥만으로 세워진 문이어서 일주문이라 불린다.

자타, 안팎, 옭고 그름이 둘이 아니면 모든 세계가 한 마음에서 벌어진 일심법계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이문을 들어서면 사바세계에서 피안인 열반의 세계로 또, 속세에서 진리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뜻이다. 

 

 

설법전

대규모로 설법이 이뤄지는 전각으로 석가모니 부처님이 주불로 모셔져있다.   

 

길상보탑

길상사를 무주상보시한 길상화 보살님과 법정 스님의 고귀한 뜻을 기리고 길상사와 성북성당, 덕수교회가 함께 한 종교간 교류의 의미를 전하기 위해서 (영안모자 회장 백성학)2012년 11월 11일 무상으로 기증하여 복장봉안품을 봉안하여 세워진 탑

 

관음보살상

길상사 개산 당시 천주교신자인 최종태 조각가가 만들어 봉안한 석상으로

종교간 화해의 염원이 담김 관음상이다

 

범종각

범종은 법고, 목어, 운판과 더불어 사물 가운데 하나다. 범종은 땅위와 하늘세계를 올려 인간과 천신을 제도하며 짐승의 가죽으로 만든 법고는 땅위의 축생을 제도하며, 물고기 형상으로 만든 목어는 수중의 중생을 제도하며, 구름문양이 새겨진 운판은 허공을 나는 새 등의 축생을 제도한다는 뜻을 각각 담고 있다.

 

 

극락전의 문고리와 문양들

 

극락전

아미타부처님을 봉안한 길상사 본법당과 풍경

 

 

유마선방

스님과 일하는 불자들이 정진처소

 

 

침묵의 집

누구에게나 항상 열려있는 명상의 공간이다.

 

길상선원

재가자들을 위한 시민선원으로 길상사나 다른 도량에서 3회 이상 수련회를 마친 사람에 한해 방부를 들일 수 있다. 선원장스님의 지도로 일 년 내내 실참이 이뤄지는 좌선방이다. 

 

침묵의 집 앞에 있던 대나무 풍경, 바람에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발길을 잡았다.

처음으로 보고 듣는 대나무 풍경 소리.

일반 풍경소리와는 다르게 나직하게 가슴을 적신다.

 

길상사 주변 풍경

성북동 성당

 

길상사 가는 길에

 

 

길상사에서 내려오는 길,

혜화동 성당을 다녀오신다던 어르신들,

인천에서 일부러 오셨다면서 길상사까지 가는 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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