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여행/남산골 한옥마을[5천년 역사의 한옥, 한국의 멋, 전통가옥

2013. 3. 22. 08:20여행 이야기/국내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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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멱산(남산) 아래 남산골 한옥마을

 

서울여행/남산골 한옥마을[5천년 역사의 한옥, 한국의 멋, 전통가옥]호미숙

남산골 한옥마을 홈페이지:http://hanokmaeul.seoul.go.kr

 

서울시 중구 필동에 일이 있어 방문해서 일을 마치고 약간의 시간이 남아 남산골 한옥마을에 들렀다. 이날은 시간이 넉넉하지 않아 한옥을 위주로 둘러보게 되었다.

 

서울은 세계적인 관광도시로 많은 해외 관광객들과 내국인들은 고궁을 비롯해 남산 한옥마을을 찾는 사람들이 상당하다. 남산의 옛 이름을 목멱산이라고 하였으며, 도성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어 남산으로 불렸다고 한다. 남산은 경치가 아름다워 조상들은 골짜기마다 정자를 짓고 자연의 순리에 시·화로 화답하는 풍류생활을 하던 곳이고 각종 놀이와 여가생활을 위해 전통정원이 넓게 자리했다.

또한 이곳에는 서울시 민속자료 한옥 5채를 이전, 복원하고 한옥에 살았던 사람들의 신분성격에 어울리는 가구 등을 배치하여 예스러움을 그대로 보여준다.

 

한옥 5채 소개(홈페이지 참고)

 

옥인동 윤씨가옥

대략 1910년대에 지었다고 알려진 옥인동 47-133번지 가옥을 그대로 본떠서 새로 지었다. 당시 옥인동 47번지 일대 너른 땅은 순종(純宗)의 황후인 순정효황후(1894~1966)의 큰아버지 윤덕영(1873`~1940) 소유였다. 그는 20여 채에 달하는 집을 짓고 일가붙이와 모여 살았는데, 그 가운데 서양식으로 지은 사위집(옥인동 박노수 가옥, 서울특별시 문화재자료 제1호)과 윤덕영의 측실이 거처했던 옥인동 47-133번지 가옥만 남아 전한다.

매우 규모가 큰‘⨅자형’안채에 사랑채 구실을 하는 마루방과 대문간이 더해져 전체 배치는 ㅁ자형을 이루지만 아무래도 안채를 위주로 짠 공감임을 짐작할 수 있다. 간소하게 민도리집을 채택하였으나 안채 앞쪽은 일반 민가에서는 보기 드물게 기둥머리에 익공(翼工)을 치장하는 등 건축구조와 세부기법은 당시 최상류층 주택의 면모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제기동 해풍부원군 윤택영 재실

이 가옥은 조선 제27대 순종(純宗)의 장인(丈人) 해풍부원군 윤택영이 그의 딸이 동궁(東宮)의 계비(繼妃)로 책봉(冊封)(1906)되어 창덕궁(昌德宮)에 들어갈 때 지은 집으로 전한다. 동대문구 제기동 224번지에 있던 것을 이곳 남산골 한옥마을에 이전 및 복원하였다. 평면은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元(원)'자 모양인데 제일 윗터에 사당(祠堂)을 배치하고 그 아랫터에는 몸채를 두었다.

 

관훈동 민씨가옥

이 집은 민영휘(閔泳徽, 1852~1935) 저택 가운데 일부였다. 그는 관훈동 일대 너른 땅에다 집을 여러 채 짓고 일가붙이와 함께 살았는데, 옛 터의 위치는 종로구 관훈동 30-1번지였다. 원래 집터에는 안채와 사랑채 외에도 별당채와 대문간채, 행랑채 같은 집채가 있었다고 전하나 나중에 소유자가 바뀌면서 안채와 여기에 연결된 중문간채만 남기고 모두 헐려졌다.  

보통 서울지방 안채는 안방 앞쪽에 부엌을 둬서‘ㄱ자형’으로 꺾어 배치하는 편인데, 이 집은 드물게 부엌과 안방을 나란하게 놓았다. 이 밖에도 고주 두 개를 세워 짠 넓고 큰 목조구조와 6칸에 달하는 부엌의 규모, 그리고 마루 밑에 뚫려 있는 벽돌 통기구 등은 당시 일반 가옥과 다른 최상류층 주택의 면모를 확연하게 보여주고 있다.

 

삼청동 오위장 김춘영가옥

이 가옥은 조선말기 오위장을 지낸 김춘영이 1890년대 지은 집이다. 종로구 삼청동 125-1번지에 있던 것을 남산골 한옥마을에 이전, 복원하였다.  

'ㄷ'자형 안채에 'ㅡ'자형 사랑채를 연결시켜 ('ㄷ') 형의 평면을 이루고 있으며, 안채 대청은 오량가(五樑架)이고 나머지 부분은 모두 삼량가(三樑架)이다. 판대공(板臺工)을 사용하고 홑처마로 꾸미는 등 전체적으로 평민주택(平民住宅)의 양식을 보이고 있지만, 안방의 뒤쪽 벽, 즉 길가에 면한 부분에 사괴석(四塊石)과 전돌(塼石)을 사용하여 화방벽(火防壁)을 쌓아 집의 격조를 더 높인 것이 특징적이다.

 

삼각동 도편수 이승업가옥

이 가옥은 조선말기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에 의하여 경복궁(景福宮)이 중건(重建)될 때 도편수(목수의 우두머리)였던 이승업이 1860년대 지은 집으로 중구 삼각동 32-6번지에 있던 것을 이곳 남산골 한옥마을에 이전, 복원하였다.  

안채는 '丁(정)'자형이고 사랑채는 'ㄴ'자형의 평면이다. 안채에서 부엌과 안방쪽은 반오량(半五樑)으로 꾸며 전후면(前後面)의 지붕길이를 다르게 꾸민것은 특색이 있는 구조이다. 대청과 건넌방쪽은 일고주오량가(一高柱五樑架)로 구성되어 있다.

 

전통 농기구 지게를 보고

 

지게의 사계절

homihomi-호미숙

 

긴 잠의 계절이 깨어 하품하는 봄

침침한 헛간에서 엎드려 동면하던

낡은 지게도 기지개를 켠다

아버지 등에 업혀 나선 나들이 길

흐르러지게 피운 봄꽃 꺾어 실은 꽃지게

 

작렬하던 햇살이 대지를 펄펄 끓는 여름

마당 한 귀퉁이 비스듬히 서있던

뼈대 추린 지게도 땀이 솟는다

갈증 일으켜 마중물까지 마셔버린 우물

아래뜸 저수지 물 길어 나르는 묵직한 물지게

 

사각의 금괴가 들판에 흩어지는 가을

농부가가 출렁대고 논두렁에 막걸리는 고수레

건아하게 취한 아버지 등짝에서 노랫가락 장단

지게꼬리 덩실 덩실 흥얼대는 쌀지게

 

불꽃 혀로 청솔 휘감아 아궁이가 삼켜대는 겨울

누렁소가 누워 종일 껌을 씹는 게으른 하루

뒷간 가득 찬 똥물, 바가지로 퍼 담으며

눈길 지나 빈 밭까지 지고 가는 똥지게

 

이보오, 성희 아부지,

그놈의 지게 좀 내려놓으소

그만하면 젖도 뗄만하지 않겄소

겨우내 도외지 자석들에게 힁허케 댕겨나 옵시다

 

 

 

 

남산골 한옥마을 둘러보기

한옥마을에 드어서며 광장의 외국 관광객들

 

천우각

천우각

남산 북쪽 기슭 한옥마을이 들어선 필동(筆洞) 지역은 조선시대에는 흐르는 계곡과 천우각이 있어서 여름철 피서를 겸한 놀이터로 이름 있던 곳이다. 또한 청학이 노닐었다고 하여 청학동으로도 불렸다고 한다.

 

왼쪽 삼청동 오위장 김춘영가옥, 오른쪽 삼각동 도편수 이승업가옥

 

관훈동 민씨가옥

 

아름다운 한옥의 곡선과 처마

 

한복도 입어보고 한국식 전통에 대한 호기심에 사진에 담던 외국인들

 

봄이 오고 있는 3월

 

옥인동 윤씨가옥

 

 

장독대풍경

 

부엌 풍경과 헛간 농기구 보관소 풍경(멍석, 키,쌀독, 지게,절구,아궁이,가마솥)

 

여인들의 땀이 배인 부엌살림

-소줏고리-

양조주를 증류시켜 소주를 만들 때 쓰는 옹기.

소주를 골 때 주로 쓰는 기구이다.

소줏고리는 증류의 원리를 이용해 소주를 만들 때 쓴다. 아래짝, 위짝의 두 부분으로 되어 있으며 전체적인 모양은 숫자 8과 흡사하다. 소줏고리의 위, 아래는 모두 뚫려 있으며, 잘록한 허리 부분에는 아래쪽으로 경사진 주둥이가 달려있다.

 

  부엌에서 본 살림들(풍로, 용수,똬리,복조리,솔)

 

제기동 해풍부원군 윤택영 재실

 

 

 

 

 

 

 

전통놀이 투호를 하던 외국 관광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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