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대통령 부부가 눈물로 약속한 “결코, 조국은 당신들을 잊지 않겠습니다.” 파독광부.간호사.간호조무사 세미나

2011. 12. 29. 08:11자전거 이야기/자전거랑(~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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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독광부. 간호사. 간호조무사 세미나-결코 조국은 당신들을 잊지 않겠습니다. -호미숙

 

박정희 대통령 부부가 눈물로 약속한 “결코, 조국은 당신들을 잊지 않겠습니다.” 라고 한 약속을 이제는 이행하라.

독일에서 흘린 눈물 후세대가 알까?

 

지난 12월 21일 서울 중구에 위치한 충무아트홀 컨벤션에서는 아주 특별한 세미나가 있었습니다. 지금 이 시대의 행복을 누릴 수 있게 하도록 만든 ‘대한민국 종자돈’ 즉 산업의 밑거름이 된 경제의 시작을 만든 주인공들이 모인 자리였습니다.

1960년대 우리나라는 세계에서도 가장 가난한 나라로 지목 받을 정도의 어려운 시절 직업을 찾아 먼 독일 땅으로 건너간 파독광부와 파독간호사, 파독간호조무사들의 48주년 기념 세미나 및 총회를 갖았습니다.

 

지난 1회에 비하여 상당히 많은 분들이 참석했으며 충무아트홀 행사장을 꽉 메우고 자리가 모자를 정도로 연세 지긋한 어르신들이 모였습니다. 권이종 교수의 사회로 시작한 세미나는 김태우 (사)한국파독광부. 간호사. 간호조무사 연합회 회장님이 세미나를 이어갔습니다. 김황식 국무총리의 축하영상을 이어 한스 올리히 자이트 주한독일대사의 축사를 마치고, 백영훈 박사의 발표가 이어지고 파독 간호사 시절의 회고를 황보수자님께 듣고 파독 광부 시절의 회고를 권이종 교수가 해주었습니다.

 

일부러 자세한 세미나 내용을 기록하고 설명합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그 때 어르신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경제성장도 없었음을 인지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역사는 어제로부터 오늘까지 이어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먼 타국 독일까지 가야만 했던 그 시절의 어려움과 그 결과 어떻게 대한민국이 성장했는지에 대하여 더욱 상세히 알고 지금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일상에 임해야하는지 왜 조국이 필요하고 애국을 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깊이 새겨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또한 그렇게 피땀 흘린 파독 광부, 간호사, 간호조무사들의 업적을 더욱 기리기 위해서라도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그들을 외면하지 말고 그들의 발자취를 새기고 기념하도록 잊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김태우 회장 환영사

1966년 가을 어느 날 뒤셀도르프 천주교 교육관에 모인 젊은 남녀 15명의 이야기는 48년 간 새겼습니다. 그 때 파독 광부로 함께 했던 동료 스테판 김은 미국에 살고 있으며 한국에서 만나 헤어질 때 눈물을 흘리고 말았습니다. 20대의 젊은 시절 독일에서 값진 삶에 대하여 긍지를 갖습니다. 그때가 없었으면 결코 오늘이 없었을 것이고 그날이 있었기에 오늘이 있습니다. 1963년 12월 그때 우리나라 국민소득은 68불이었고 1억불 교역이었으며 127개국에서 꼴찌에서 두 번째였던 나라였지만 지금은 국민소득 2만불이며 1조억불의교역으로 세계 9위의 교역국가로 발전했습니다.

 

독일서 일한 2만 여명의 동료들에게 새로운 사업을 펼치고 있으며 그 때의 꿈과 의지를 헛되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세미나를 개최 했습니다. 2012년 새롭게 출발 할 것입니다.

 

김황식 국무총리 축사(축하영상)

우리나라 광부와 간호사들이 일터를 찾아 독일로 떠난지 48년을 맞아 세미나를 갖게 된 것을 뜻 깊게 생각하고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1963년 240여명의 독일에 첫발을 디딘 이후 70년대 중반까지 2만 여명이 가깝게 젊은이들이 독일에서 땀을 흘렸습니다. 지하 1천 미터 갱도에서 매몰 공포와 섭씨 35도를 넘나드는 더위를 이겨내고 노인 병원, 중환자실에 배치된 간호사. 간호조무사들은 궂은일을 도맡아 일하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지난 1978년 독일에 유학하면서 간호사와 광부를 만났으며 그분들의 눈물겨운 노력을 잊을 수 없습니다. 우리 젊은이들이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독일을 찾았던 것처럼 다른 나라 젊은이들이 우리나라를 찾고 있습니다.

우리는 품격 있는 선진일류국가로 나가야하며 지금이 있기 까지 헌신과 봉사한 분들에 대한 예우를 다해야 합니다. 그래서 정부는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의 공로가 오래토록 기억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행사에 참석하려고 했으나 국무일정으로 축하영상으로 대신했습니다.

그 외에도 고용노동부 장관 이재필장관의 축사와 이정현 국회의원도 축사를 보내주셨습니다.

 

한스-올리히 자이트 주한 독일대사 축사

한국의 광부와 간호사가 독일로 파견 된지 48년째 되는 날이며 한국과 독일에게 자국의 역사에 매우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독일은 이미 50년대 중반에 경제기적을 이룩하였던 상태였고 2차 대전 패배 이후에 마살계획에 힘입어 독일은 경제 재건에 나섰으며 경제 발전이 시작되었으며, 특히 석탄 산업이 번창하고 이었습니다. 60년대 독일 산업은 한계에 부딪혔으며 그것은 노동력의 부족이었습니다. 그래서 외부의 도움이 필요한 때였습니다. 한국은 한국 전쟁으로 고통을 받았고 농업국가 형태라서 산업은 전무했을 정도였고 경제개발을 위한 자본이 없었을 때였습니다. 한국의 실업률은 30%였으며 평균소득이 매우 낮아 한국은 인력을 해외로 파견하려 실업률을 낮추고 외화 소득을 얻으려했습니다. 그래서 한국에서 1960년부터 파독 사업을 위한 협상으로 12월 21일 최초의 한국 광부 125명이 독일로 파견되었습니다. 그 후로도 1978년까지 독일로 파견된 광부는 9000명에 육박했을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1966년부터 시작해서 12,000명의 간호사가 독일로 파견되었고 70년대까지 파견된 간호사는 총 2만 명이 넘었습니다.

 

한국인들은 유능했으며 열심히 일했고 여가시간마저 없을 정도로 일했으며 초과 근무나 야근도 감내해야 했습니다. 그 결과 많은 분들이 독일 사회에 잘 적응했으며 직업적으로도 크게 성공하여 독일과 한국 모두에게 도움을 주었습니다. 파독 한국인 중 상당수는 고학력 소지자였으며 간호사 중에는 병원에서 높은 지위에 올라간 분들도 있고 의사가 된 분들도 있었습니다.

파독 한국인 중 1/3은 독일에 남아 사회일원이 되었으며 파독 광부와 간호사가 결혼한 경우도 있고 독일에는 약 3만 명의 한인 교포 2세가 거주하고 있습니다. 이런 분들이 있어서 한독 우호관계는 현재와 미래의 양국 관계에 주춧돌이 될 것입니다.

 

백영훈 한국산업개발 연구원의 발표

1 개발연대의 회고와 파독광부. 간호사. 간호조무사 업적의 재조명

현재라는 시점에서 역사를 돌아봄은 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이다. 어떠한 이해와 교훈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인가. 어떠한 미래를 그 역사의 거울에 비춰볼 수 있는 것일까. 그것은 지금 이 땅에 살아 숨 쉬는 우리가 모두 생각해야할 문제이다.

지난 11월 12일 우리나라에서 G20 정상회의가 한국에서 열렸다. 아시아에 열린 최초의 G20 정상국가 회의에서 우리나라가 의장국으로서 세계 위상을 널리 알렸다. -중략-

‘쓰레기통에서 과연 장미꽃이 피는가‘ 1955년 10월 8일자 UN한국재건위원회에서 인도대표 메논이 한 말이다. 한국 전쟁 직후 한국의 복구를 돕기 위해서 UN에서 파견된 특별조사단의 단장인 메논이 일주일 동안의 방문 보고한 내용이다.

 

학생들이 거리에 뛰쳐나와 ‘못살겠다. 갈아보자’, ‘외국상품 추방하자’, ‘독재정권 타도하자’, 등의 구호를 외치며 시민 항쟁을 주도하였고 드디어 1960년 5월 19일 학생 혁명으로 이끌어 이승만 정권을 붕괴시키는 역사적 게기를 만들었다.

한국 경제발전은 박정희 대통령의 서독 방문에서 시작되었다. 아이사의 ‘프로이센’은 박 대통령의 서독 방문을 실은 기사에서 그곳에서 유력한 일간지의 한 기자가 사용했던 말이다. 근면, 검소, 규율적인 사람을 뜻하는 ‘프로이센’이란 단어는 독일인을 상징한다.

박대통령은 서독 방문을 통하여 너무나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돌아온다. 라인강의 기적을 일으킨 원동력이 무엇인가에 그것은 바로 독일인들의 근검한 생활과 열심히 일하는 것과 일치단결의 국력의 힘이었다.

 

2 아우토반에 뿌린 눈물

박정희 대통령이 서독을 방문하게 된 역사적 계기는 바로 파독 광부. 간호사. 간호조무사들이 서독에서 그토록 어려웠던 일터에서 피눈물 나는 노동의 결과에서 이뤄진 것이다.

서독에 파견 간 광부들과 간호사. 간호조무사들의 모습에서 ‘코리아 프로이셀, ’코리아 앤젤‘ 이라고 추켜세우며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리곤 했다. 서독 언론에서는 매일 같이 파견된 우리나라 일꾼들의 모습을 특필로 소개하곤 했다. 이것은 곧 우리나라 개발연대를 이끌어온 정신적 씨앗이었다. 그 후로 박정희 대통령을 서독에 초청하게 이르렀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처음의 일이다. 백영훈 연구원장은 그 당시 중앙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었으며 경제고문과 독일 통역관으로 수행했었다. 서독의 에르하르트 수상과 박정희 대통령이 손을 꽉 잡고 통일의 그날까지 경제발전을 위해 힘쓸 것을 간곡히 충고했다. 분단국 독일도 공동운명체와 다름없다며 한국의 어려움을 서독의 어려움으로 알고 전적으로 협력할 것을 약속했다.

 

1964년 12월 8일 서독을 방문하던 박 대통령 일행은 ‘뤼브케’ 서독 대통령이 안내로 루르 지방 탄광지대의 한 공회당에 도착했다. 탄광 마강 현장에서 갓 나온 500여명의 광부들이 대통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광부들의 얼굴과 작업복은 석탄에 묻혀 흙투성이 그대로였다. 대통령이 단상에 오르자 애국가가 울렸다. 음악만 흐르고 가사가 나오지 않는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한 소절 한 소절 불러감에 점차 애국가 소리가 커졌다. 마침내 ‘대한사람 대한으로..’ 하는 대목에서 이르자 어느덧 목멘 소리로 변했다. 애국가는 마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 장면을 말이나 글로 설명할 수가 없다. 가슴과 가슴으로 부둥켜안고 소리도 없이 고이던 눈물, 광부들은 제 나라 대통령을 보자 왈칵 복받치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반가움에 앞서 서러움이었는지 모른다. 대통령도 마찬가지로 내 나라 젊은이들이 고생하고 있구나, 생각하니 대통령 가슴은 미어질 듯했다. 온몸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조국을 떠나 이역만리 남의 나라 땅 밑에서 얼마나 노고가 많으십니까, 광원 여러분, 조국의 명예를 걸고 열심히 일합시다. 비록 우리 생전에는 이룩하지 못하더라도 후손을 위해 남들과 같은 번영의 터전만이라도 닦아 놓읍시다.” 마침내 여기저기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고, 끝내 대통령도 울고 말았다. 서독의 대통령과 수행원들도 함께 울고 말았다.

 

밖에 나오자 어느새 수백 명의 광부가 운집해있었다. “각하 손 한번 쥐게 해주세요. 우리 두고 어떻게 떠나시렵니까?” 광원들이 줄을 지어 손을 내밀며 목 맨 소리로 대통령에게 매달렸다. 외치는 만세소리에 파묻힌 일행은 그 자리에서 한 시간 동안 떠나지 못했다. “대한민국 만세! 대통력 각하 안녕히 가십시오.” 목이 쉬도록 외친 광원들이 함성을 뒤에 남기고 떠나온 일행들의 마음엔 눈물이 벅차올랐다.

 

아우토반에 올라서 가는 동안 뤼브게 서독 대통령이 말했다. “각하 울지 마십시오, 잘 사는 나라를 만드십시오, 우리가 돕겠습니다. 분단된 두 나라가 합심하여 경제부흥을 이룩합시다. 공산주의를 이기는 것을 경제건설 뿐입니다.” 손수건을 꺼내 박정희 대통령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말없이 합의, 가슴으로 맺은 공감대, 자각과 분별, 그것이 위대한 힘을 생겨나게 했다. 나는 그 불이 절대 꺼지지 않았다는 것을 안다. 꺼질 수가 없기 때문이다.

 

3. 한민족시대의 경제전망

한국경제는 지금 세계사의 의미에서 세계경제의 중심권에 자리 잡고 있다. 세계는 지금 한류 시대가 열리고 있으며 경제뿐만 아니라 예술, 문화, 스포츠 등 모든 분야에서 한국의 물결이 세계에 고동치고 있다. 지금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시대가 된 것이다. -중략-

 

4. 통일 시대의 개척

통일은 우리 민족의 마지막 남은 염원이요, 꿈이요, 또한 한이다. 통일이 우리 희망대로 이루어질 수는 없겠지만 우리는 통일에 대한 알찬 대비를 철저히 갖추어야한다. 어느 날 갑자기 통일이 우리 앞에 현실로 다가올 수 있다는 것은 독일의 경험에서 잘 알 수 있다. 통일을 대비하기 위한 우리의 최우선 과제는 과연 통일의 시대를 대비하여 얼마만큼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느냐는 물음이다. 통일은 무상으로 얻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엄청난 경제적 대가를 필요로 한다. -중략-

 

5. 미래는 그냥 오지 않는다.

사람의 한평생엔 몇 차례 기회를 준다고 한다. 중년쯤을 넘긴 어떤 사람이라도 자신의 과거를 되돌아보면 수긍이 갈 것이다. 모처럼 닥치는 기회를 선용한 사람과 순간순간 놓쳐버리고만 사람 간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한 민족도 나라도 그와 비슷하리라 생각이 든다. 가까이 오늘의 일본은 1세기 여에 걸쳐 몇 차례의 기회를 선용한 민족이라 여겨진다. 페리 제독의 흑선을 개국으로 맞아 소위 화혼 양재로 부국의 기틀을 닦은 것은 1차의 선용이라 할 것이다. 그 뒤 군국주의의 원자탄 세례를 자초하고 이웃 민족에게까지 천추의 한을 안겨준 것은 기회의 악용이라 해야겠으나 패전 후 40여 년 사이 그들의 부흥은 크게 보아2차의 기회 선용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중략

그런데 지금 우리 국민의 시대성과 사회성을 보는 현실감각은 과연 어떤가. 시대정신은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의 새로운 삶을 영위하기 위해 새로움을 어떻게 생각하고 새것을 나타내기 위해 무엇을 가지고 있으며 새것을 가지려고 무엇을 해야 하느냐는 정신적 질문들을 던진다. 이렇게 질적으로 향상된 삶을 위하여 우리는 어떠한 정신적 화학작용을 일으키고 있는 건가. 얼마만큼 구체적이며 새로운 힘을 길러내고 있는 것일까. -중략

 

특히 오늘의 경제 난국이 경제적 요인, 즉 정치관이 제 몫을 다하지 못하고 있고, 사회가 불안한 현실 등에도 기인하고 있음을 생각할 때 경제 원리와 원칙만으로 타개하기에는 분명히 무리가 있다. 그러나 경제 문제는 역시 경제 논리로 풀어야 한다. 경제 현실 그 자체에 대한 올바른 진단을 토대로 경제 원리에 충실한 처방이 먼저이다.

경제학의 궁긍적인 목표는 최대 댜수의 최대 행복에 귀착된다. 경제성장, 수출, 물가, 고용 등 모든 경제 지표는 이 목표를 이룩한 수단에 불과하다. 따라서 잘 사느냐 못 사느냐의 판단은 그 나라에 사는 절대다수의 국민 층이 얼마만큼 물질적 토대를 둔 풍요와 정신적 행복감에 충족되고 있느냐에 귀결된다.

 

 

파독간호사 시절을 회고하며

황보수자-한국파독광부간호사간호조무사 이사, 인제대학교 명예교수

 

파독광부 시절을 회고하며

권이종 -한국파독광부간호사간호조무사 상근이사 한국교원대학 명예교수

 

협회 회원들을 반갑게 맞이하는 김태우 회장

 

 

파독 48주년, 연세 지긋한 어르신들이 행사장에 찾아들고 있었습니다.

 

중구 충무아트홀 컨벤션 홀

 

 

 

 

 

 

행사가 진행되는 시간 눈발을 날리는 겨울 날씨,

지난 그 약속을 지켜줘야 할 몫은 지금 우리세대입니다.

정부는 파독으로 인해 종자돈을 모아 온 광부와 간호사, 간호조무사들에게 특별한 대우를 해주길 바랍니다.

 

 

 

 

 

아이를 낳은 후 한국의 임금 7배인 서독으로 떠난 간호사들.

시체실에서 시체닦이도  했다고 합니다, 분야별로 나뉘어 배치되어

한국인으로 최선을 다했다고합니다.

 

 

 

 

 

권이종 파독 간부, 한국교원대 명예교수이며 사회를 맡아 진행했습니다.

 

 

파독 광부,간호사,간호조무사 협회 김태우 회장의 환영사

 

독일 한스 대사에게 선물을 드리고 있는 김태우 회장

 

 

김황식 총리의 축하영상

 

 

 

 

 

 

한스-올리히 자이트 주한 독일대사 축사

 

파독 광부들과 간호사들을 환영하고 있는 기사 그때의 보도를 보여주며 설명하고있습니다.

 

 

백영훈 한국산업개발 연구원의 발표를 하고  있습니다. 그 시절에 박정희 대통령과 함께 서독 방문시 통역관으로 갔기에

그 때 그시절에 대하여 생생하게 기억하며 그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백영훈 박사님의 생생한 증언에 그때를 떠올리며 눈물을 훔치고 있던 어르신들

 

파독간호사 시절을 회고하며

황보수자-한국파독광부간호사간호조무사 이사, 인제대학교 명예교수

 

 

 

 

 

 

 

 

권이종 교수- 사단법인 상근 이사님이 엮은 독일에서 흘린 눈물

파독 광부, 간호사, 간호조무사의  생생한 육필수기 모음집

 

김태우 회장님이 직접 만든 그 후 50년 그리고 지금까지 발전된 우리나라 모습을 영화로 담았습니다.

 

 

 

 

 

50년의 세월의 변화를 영상으로 보면서 그 시절과 그 때의 회고를 하던 어르신들의 눈빛에 눈물이 고입니다.

 

 

긴 시간 세미나를 마치고 총회를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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