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미숙 포토에세이[길바닥에서 건져 올린 삶과 희망(천호동 노점상인 탐방)

2011. 1. 29. 09:43글 이야기/포토포엠.포토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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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점상을 하면서도 해맑게 웃어주던 아주머니- 빨래집게로 물어 놓은 스카프

길바닥에서 건져 올린 삶과 희망(노점상인 탐방4) 호미숙

 

체감온도 영하 20도, 살을 에는 칼바람을 가르며 구 천호네거리를 찾았다. 사통팔달의 목 좋은 곳에 한겨울 바람막이 하나 없이 좌판을 펼쳐놓은 과일가게 노점상. 스쳐가는 사람은 많지만 가게를 둘러보는 사람은 하나 없다. 내어 놓은 과일이 맹추위에 얼기라도 할까봐 안절부절 마음 졸이며 커다란 스카프로 둘러싼 얼굴에 시름이 깊다. 설 명절을 앞두었지만 재래시장을 찾는 이들은 어디로 갔는지, 얼어붙은 서민경제와 고공 행진하는 물가에 엎친 데 덮친 구제역파동에 사람들의 표정은 어둡기만 하다. 노점상 주인아주머니 좁디좁은 의자에 누워 이불을 끌어다 덮고 얼굴을 가려버린다.

 


-한동안 몸이 아파 쉬웠다가 다시 나왔다는 아주머니 빠른 쾌유를 빕니다-

노점의 아주머니들 모습은 하나같이 색깔만 다른 스카프로 얼굴을 감싸고 빨래집게로 물어 놓았다. 얼핏 보면 절로 웃음이 나올 정도지만 강추위를 이기기 위한 임시방편인 것이다. 허허벌판 같은 곳에 쪼그리고 앉아 맨 손으로 마늘을 까고 있던 올해 연세 69세의 할머니, 30년 넘게 같은 장소에서 이 일을 하면서 올해처럼 긴 한파와 사람마저 뜸하기는 처음이라며 근심에 주름 골이 깊어간다.

-인터뷰에 가장 많은 이야기를 해주셨던 69세 아주머니 길바닥에서 살아온 30년 세월이 헛되지 않았음을 말해주셨다-

“노점상 하면서 우리를 취재하는 사람 처음 봤네, 뭣하러 찍어 뭐 잘난 걸 한다구“ 가까이 다가가 이런저런 질문을 던지는 리포터에게 처음부터 손 사레 치며 거부하다가 거의 두 시간 가까이 노점상의 애환과 그동안 꾸며온 길바닥 삶의 역경을 들었다. 이 곳 노점상들은 질풍노도 같은 세월이 20년은 기본이고 30년을 훌쩍 넘겨 생활 했을 정도다. 친정어머니가 40년 동안 하던 노점상을 이어받아 25년 이어오고 바로 앞 가게를 얻어 아들도 함께 건강원까지 3대째 경영한다고 했다.

 


-작은 소쿠리에 비닐봉지의 따뜻한 물을 마시던 아주머니-

노점상마다 취급하는 종류도 다양하여 50가지에서 100가지를 넘기며 약초 건제품과 야채를 팔고 있었다. 리포터가 막 찾은 시간에 늦은 점심을 드시던 아주머니(63세)는 비닐봉지에 물을 담아 옥수수랑 함께 쪄내어 소쿠리에 비닐봉지를 펼쳐 뜨거운 물을 마시고 있었다. 끼니마저 길바닥에서 차가운 바람에 식은 채로 해결해야 하는 그 분들의 삶에 숙연하기까지 했다. 아무리 궂은 일로 노점상 좌판을 할지언정 아주머니들이 누구보다 열심히 사는 모습이야 말로 교훈이 따로 없었다. 하루 수익이 얼마가 되었든 간에 구걸하지 않고 일한만큼 얻어지는 수입에 결코 불평하지 않는다했다. 다들 허리통증과 관절염으로 고생하면서도 얼굴은 해맑기만 하다.

  -친정 어머니 40년 노점생활, 그리고 딸의 20여년 노점생활, 바로 앞 건강원 사장이 아들인 3대째 이어온 삶의 희망- 

가장 힘들 때가 언제인지 여쭤보니 무더운 날과 추운 날에 손님도 없을 때가 가장 힘겹다고 했다. 노점상이지만 물건 만큼은 좋은 것을 취급하는 것이 원칙이란다. 찾는 사람들은 지나가는 손님이 아니라 늘 찾는 시장의 단골손님이기 때문이란다.

 


바람이 있다면 말씀해달라고 하니 “나라에서도 이런 재래시장을 살리려고 노력을 하지 않고 대형마트나 백화점을 허가하니 우리네 같은 사람은 살기 더 힘들지, 천호동 이 쪽에도 대형마트나 백화점이 8군데나 된다구, 요즘처럼 날씨마저 매섭게 추우니 누가 재래시장을 찾기나 하겄어, 나 같아도 따시고 편한 곳 찾아가지, 안 그려? ”천호시장도 어서 암사시장처럼 최신형으로 만들어 주면 좋겄어.”

장사하면서 가장 보람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는지 물어보니 “ 노점상 한다고 절대로 남부끄럽지도 않고, 누구보다 부지런히 일해서 버는 거고, 큰돈이 아니라도 애기들 키우고 핵교도 갈치고 시집장가 보내서도 조금도 부담을 안주거든“ ”우리가 다섯 자식들 키우는 비용보다 요즘 애들 하나 키우는 데 드는 돈이 더 들 정도여. 그러니 우리가 자식만 보고 살면 뭣혀, 조금이라도 움직일 수 있을 때 한 푼이라도 아끼고 벌어 쓰는 게 보람이라면 보람이지”

“저쪽 길 건너처럼 잘 정비된 깨끗한 노점상을 만들어 주면 좋을 것 같은데요?” 하고 물으니 “여기는 안 돼! 바로 시장 통 가게 앞이라 이 앞의 가게에 피해를 주면 안 되잖어” “그냥 불편하지만 이렇게라도 허락해준 것으로도 감사해야지“ 추운 날 어떻게 노점에서 장사를 할 수 있는지 난방 문제가 걱정되어 여쭤보니 앉아 있는 자리를 일어나 보이며 ”이렇게 의자 밑에 불을 피워 따뜻하게 하는겨, 안 그러면 어찌 이 겨울을 보내겄나?“ 다행이다 싶었다. 각 좌판마다 가스로 불을 피워 그나마 언 몸을 녹일 수 있었다. ”우리 몰골이 웃기지? 한 여름 더운 날, 그런 날은 더 해! 커다란 밀짚모자도 쓰고 비라도 내리면 우비까지 걸치고 웃기지도 않어, 하하하”

 

게르마늄 돌에 가래떡을 굽고 찐 옥수수를 팔던 아주머니는 처음에는 결코 인터뷰에 응하지 않더니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이런저런 살가운 이야기 까지 건넸다. 올해 연세 63세인데도 거의 막내라며 큰 형님들이 대단하다고 극찬한다. 잘 구워진 가래떡을 주문하면서 사오려는데 먼저 취재했던 다른 아주머니가 일부러 사주려고 왔다고 한다. 얼마나 고마운지 샀던 떡을 나눠 드리며 오늘 취재에 응해주어 너무 고맙다고 하자 다음부터 지날 때마다 아는 척이라도 하라고 한다.

일자리 없다고 힘들어 하는 사람들에게 한마디 해주세요라고 부탁하니 “사람들이 열심히 살려고 하지 않고 늘 편하고 쉽게 살려고만 해, 그러면서 나라에서 공짜로 뭐든 해주길 바라기만 하지, 그래서 무조건 무상으로 해주고 이유 없이 돈을 보태 주면 안 돼! 오히려 그 사람들을 더 어렵게 하는 거라고, 그러니까 그 삶에서 벗어나지 못해”라며 열변을 토하셨다. 스스로 하는 만큼 살아가는 거라고 했다. 공을 튕기면 되돌아오듯 모든 게 내 할 탓이라며 눈에 힘을 주어 말했다.

 

리포터도 받아 적는다고 장갑을 벗고 두 시간 가량 서 있으니 온 몸에 한기를 느끼고 추위에 덜덜 떨며 입술마저 파랗게 얼어가고 있었다. 아주머니들이 춥다고 어서 들어가라며 등 떠밀 듯 떠밀려 집으로 돌아왔다.

하루를 지나 다시 찾은 좌판 노점, 여전히 찬바람이 부는 가운데 그나마 겨울 햇살이 따사롭게 내리 쬐고 있는 양지바른 쪽, 금세 알아보고 반겨 맞이해준다. 좌판마다 들러 인사드리고 필요한 물건들을 구입했다. 리포터가 재래시장만을 고집하는 이유는 친근한 이웃사촌이 되어 훈훈하고 넉넉한 인심이 있어서다. 즉 영원한 마음의 안식처인 고향에서만 느끼는 풋풋함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천호동 구 사거리 천호신시장 입구, 길게 늘어선 좌판 노점상-


-찐 옥수수와 구운 가래떡과 찐고구마 등만 취급하던 아주머니-

원본주소-http://homihomi.tistory.com/542

재래시장과 노점상인들의 이마에 주름이 펴지길 바라며 여러분의 많은 애용을 바라며 추천 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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