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은 요리사 '수렁에서 건진 아들 2' [둔촌맛집-풍류(일본식 퓨전포차 둔촌점) | ◈별난 맛집소개◈

2012. 7. 7. 08:06글 이야기/호미숙 자작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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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22살 원일-아들은 요리사-풍류(일식퓨전포차) 둔촌점

 

아들은 요리사 '수렁에서 건진 아들 2' [둔촌맛집-풍류 일본식 퓨전포차] 호미숙

 

6살 꼬마, 엄마 아빠 앞에서 피웠던 재롱도 기억마저 제대로 못할 나이 그때, 원일이는 아빠를 일찍 여의고 말았습니다. 남겨진 3가족에게는 청천병력과 같은 아픔에 현실을 어찌 헤쳐 나가야 할지 막막한 상황, 큰아이는 10살, 참으로 버거운 삶이 시작된 한 가운데 놓여야만 했습니다.

 

엄마는 어떻게든 두 아들을 위해서 아빠 몫까지 채워주려 했지만 그것은 욕심뿐이었고 닥친 현실 앞에서 자녀교육과 사회생활의 병행은 결코 만만치 않았습니다. 나름대로 탄탄대로를 걷고 있던 저로써는 두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은 더욱 열심히 살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루 4시간 이상 잠을 잘 수 없었고 오로지 내일의 희망만 부여잡고 꿈속에서까지 일을 하곤 했습니다.

 

갑자기 모자가정이 되어 모든 것을 이끌어가야 하는 엄마라는 자리, 그것은 좌절과 절망이 아닌 또 다른 희망을 부여잡고 오늘보다 내일을 꿈꾸며 아이들의 미래만 걱정했을 때였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또 삶의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IMF를 맞고야 말았습니다. 제가 다니던 회사가 부도를 맞게 되었고 간부급 직원들의 월급이 6개월씩 밀리고 결국에는 15000여 명의 사원들 중에 대부분 퇴사를 하고 150여명만 남아 마지막 기사회생을 노렸지만 그 또한 수포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서울에 살았던 우리 세 가족은 서울을 떠나 고향인 아빠 산소 가까이 대전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금위환향이 아닌 낙향을 택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2년간의 대전 생활, 작은 아이는 초등학교를 다녔고 큰아이는 중학교를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큰아이는 대전의 중학교 배치고사에서 ‘올100’이라는 최고의 점수로 수석으로 입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세월은 그렇게 빠르게 흘러가고 두 아이의 커가는 모습은 홀로된 엄마에게 큰 기쁨이 되었습니다.

 

서울에 있던 회사가 차츰 IMF를 극복하고 저에게 서울에 자리를 내주고 다시 서울로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하는 일은 화장품 회사의 영업 관리인 본부장으로 영업사원들을 관리하며 판매 실적으로 전쟁 같은 삶을 하루하루 이어갔습니다. 엄마는 승승장구 하고 있었지만 아이들은 대전에서 서울로 전학으로 적응하기엔 쉽지 않은 시기였습니다.

 

아빠를 잃은 상실감은 어린 두 아이들에게는 마음의 상처로 남아 학교생활을 더욱 힘들게 하였고 결국 저는 잘나가던 자리를 떠나는 사표를 던져야 했습니다. 세월은 흘러 둘째가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사춘기를 맞이하면서 둘째의 학교생활은 여전히 힘겨움이었습니다. 결국 중2 겨울방학 때 가출을 하게 되었고, 다행히 가출을 했어도 집 가까운 식당에 서빙으로 들어가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자신의 용돈을 벌게 되었습니다. 얼마동안의 아들의 반항 시기는 이어졌고 가끔 집에 들어와도 대화는 되지 않고 반목만 이어졌습니다.

 

긴 겨울 방학이 끝나고 개학을 맞아 중학교 3학년, 이때도 연이은 결석으로 엄마를 애태우긴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제 고등학교 입시를 봐야할 시기, 공부는 담을 쌓을 정도로 자기 생활이 흐트러졌기에 인문계 시험은 생각도 못했고 간신히 집 근처인 공고를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입학하면서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고만고만한 문제들을 안고 간신히 고등학교를 입학한 아이들이 있는 학교에서 우연히 반장이 되었고, 그로 인해 아이는 삶의 터닝 포인트를 맞이합니다. 교장선생님과 담임선생님, 학생주임 선생님의 칭찬으로 아이는 기적처럼 성실한 모범생이 되고 학업성적도 뛰어나 고2때는 전교학생회장에서 당당하게 선출 되었습니다.

 

그렇게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서울시교육감상도 받게 되었고 대학교를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방사선과에 들어간 아이는 뜻밖의 난관에 또 부딪게 됩니다. 우연히 시범 삼아 뇌 CT 촬영 결과가 ‘뇌수종’이라는 판독, 행복했던 우리 가족에 큰 고통으로 다가왔습니다. 어렸을 때 자전거 타다 넘어진 자리에 죽은피가 고여 그대로 하얗게 나타난 것입니다. 그동안 어떤 증세도 없었고 누구보다 건장한 청년이었는데, 아이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절망에 또 떨어져 마지막 희망을 잡으려 했습니다.

 

‘뇌수종’을 몰랐을 때는 증세가 없던 아이가 판독 후부터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어지러움에 구토가 심해지고 삶의 의욕마저 떨어뜨렸지요. 급기야 학교 휴학을 하게 되었고 한동안 마음고생을 하며 고뇌의 시간의 흐르고 ‘뇌수종’에 대한 불안감에서 조금씩 헤어나고 있을 때, 아이는 새로운 각오를 다짐하며 취미로 즐기던 요리를 하게 되었습니다. 어린나이지만 사회적응력이 뛰어나 금세 다양한 요리를 개발해내고 레시피를 작성하면서 나름의 자신만의 요리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아르바이트로 일하던 사장님과 함께 대천으로 떠나 조개구이집을 운영하며 새로운 삶에 도전을 시작했습니다.

신기하게도 그렇게 요리사로 변신해서부터는 ‘뇌수종’의 증상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아이는 현재 공익 판정으로 9월에 입대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서울로 자리를 옮겨 그 사장님은 프랜차이즈사업을 시작했고 아들은 사장님의 도움으로 성내동에 위치한 일식퓨전포차에인 ‘풍류’에서 요리사를 담당하고 있답니다. 어제 아는 지인들과 ‘풍류’를 찾아 원일이가 직접 만들어 준 맛있는 요리를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앞으로 원일이는 지금처럼 밝고 쾌활한 모습으로 어디에 있든 잘 적응하리라 생각합니다.

 

‘뇌수종’은 주기적으로 진찰을 받으며 혹시 증상이 있다면 수술하기로 했습니다. 의사선생님께서는 뇌수종이 이제는 멈춘 상태인 것 같다고 하시며 일전에 갑자기 보였던 증상은 아파서가 아니라 심리적인 것이 요인이었다고 합니다. 천만다행입니다. 앞으로 뇌수종이 그대로 멈춘 상태에서 원일이가 원하는 멋진 요리사로 거듭나길 희망하며 하루하루 즐겁게 살고 있습니다.

 

큰아이는 군 제대를 마치고 현재는 프로그래머 사업체를 차려 누구보다 실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삶은 늘 진행형으로 어떤 문제가 또 찾아올지 모르지만 지금껏 잘 이겨낸 우리 세 가족이기에 어떤 난관이 있다고 해도 충분히 이겨내리라 믿습니다.

아들의 흔적들 

[대천해수욕장추천맛집]' 머슴'수렁에서 건진 21살 아들이 운영하는 [조개구이, 족발, 보쌈]배달까지

http://blog.daum.net/homihomicafe/13408840

[대천맛집]대천해수욕장맛집 -머슴-조개구이, 보쌈, 족발, 무한리필 그리고 샤워,세탁 서비스

http://blog.daum.net/homihomicafe/13408852

 

 

 

우리 일행을 배웅해주던 요리사 아들

 

 

풍류(일식퓨전포차)-둔촌점(강동구 성내3동 439-12 2층)02-473-5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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