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여행]홍등 밝힌 주민자치센터, 신포닭강정,신포만두 [차이나 타운,자유공원-인천.중국문화축제]

2011. 5. 7. 06:32여행 이야기/국내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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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여행]홍등 밝힌 주민자치센터, 신포닭강정,신포만두 [차이나 타운,자유공원-인천.중국문화축제]


 
 
 인천 차이나 타운에 도착하자 마자 우리가 들른 곳은 바로 곧장 자장면집 '본토'-특별히 자장면의 고장이라 하니 어떤 맛일까 호기심에 기다림의 시간이 길기만 하다. 함께 갔던 일행들도 동그랗게 눈을 크게 뜨고 입맛부터 다시고 있는데 금방 뚝딱 나온 자장면 한 그릇, 일정도 바빴지만 맛에 취해서 한 젓가락 후루룩 입맛을 다지기 전에 한 그릇을 싹 비웠다. 이래서 자장면의 고장이라 하는가보다. 이제부터 차이나 타운과 자유공원에서 펼쳐지는 중국.문화축제의 날 행사장도 둘러보고 곳곳의 먹거리 볼거리를 여러분께 소개해본다. 점심에 도착해서 저녁 늦은 시간 까지 자유공원과 차이나 타운 등 아트플랫폼에서 펼쳐지는 자장파티까지 동선따라 오르락 내리락 발바닥이 아플 정도였지만 기분 좋은 하루였다. 인천에 가면 이곳 차이나 타운 특히 축제 기간에 한 번쯤 들러보면 시간이 아깝지 않을 곳으로 강력히 추천해본다-(인천.중국 문화축제는 201년 4월 30일부터 5월 1일까지 열렸다)



인천 자유공원 가는 길

 
 
 
 
 
 
천호동에서 동인천역까지 지하철을 이용해서 거의 두 시간 걸려 도착해서 물어물어 자유공원으로 발길을 돌려 오르는 길 아직까지 벚꽃이 완전히 지지않아, 가는 길 마다 꽃비를 뿌려주며 인천.중국문화축제를 축하해주는 듯 꽃가루를 뿌려 주는 것 같았다. 연인들 가족들, 친구들, 어린이들과 어른들 한국어 중국어 또는 알아 듣지 못하는 서양 외국인들까지 자유공원 축제 마당으로 향했다.

자유공원
1888년 개항장내에 조성된 한국 최초의 서구식 공원이며 당시 개항장에는 일본을 포함하여 청국, 영국, 미국, 프랑스 러시아 등의 나라들이 인천에 거주하는 자국민을 보호한다는 구실로 영사 업무를 하고 있었는데 이들의 필요로 세워진 공원이라고 볼 수 있다고 한다. 서울에 설립된 파고다 공원(탑골공원)이 1897년에 세워진 것을 보면 자유공원은 이보다 9년이나 앞선다.
처음 공원 이름도 만국공원에서 일본이 한국의 주인 행세를 하는 중에는서공원, 한국전쟁이 끝나고, 인천 상륙작전의 영웅 맥아더 동상이 이곳에 서며 공원 이름도자유공원으로 바뀌어 현재에 이른다


 
 
 
 
 
 
자유공원의 맥아더장군 동상
자유공원을 먼저 방문했으니 맥아더 장군의 동상을 찾지 않으면 왠지 인천을 다녀가도 중요한 한가지를 빼 놓고 가는 기분일 것이기에. 높은 위치에서 아래를 굽어보며 굳은 표정을 하고 있던 맥아더 장군, 주변에 흩날려 떨어진 벚꽃눈이 수북이 쌓여 5월의 눈처럼 착각을 일으킨다.


 
 
 

  한중문화원
인천광역시 중구 한중문화관은 한국과 중국의 역사가 공존하고 있는 국내 유일의 차이나타운에 자리하고 있으며 한ㆍ중국 간의 문화적, 경제적 교류의 중심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직접 중국을 방문하지 않고도 다양한 중국 문화를 느끼고 체험할 수 있도록 하여 차이나타운을 찾는 관람객들에게 더 많은 볼거리 제공은 물론 다양하고 유익한 정보를 제공함으로서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고자 건립하였다.(
http://www.hanjung.go.kr/main.asp)

외벽의 장식이 마치 중국이라도 온 마냥 이국적이어서 사진기 들이대고 기념 촬영에 여념이 없었다. 붉은 홍매화도 홍등으로 활짝 피어났다. 앞 뜰에는 작은 공원이 있다.


 
 
 
 

항아리속 맛의 비밀! '십리향-항아리만두' 기본 10분 이상 기다려야 맛을 볼 수 있는 만두
 
인천역에서 마주 보이는 곳, 이곳은 차이나 타운이다. 중화가를 들어서자 차이나 타운의 붉은 색이 시선을 끓고 어디에 고정을 둬야 할지 마음부터 설렌다. 축제에 맞춰 일부러 찾는 사람들이 구경거리가 많아서 인지 발길을 종종 멈추면서 낯선 중국을 눈으로 먼저 익힌다. 십리까지 향이 전해진다는 십리향 가게 앞에는 사람들이 줄을 지어 있고, 홍등으로 외벽 전체를 가득히 장식한 건물이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는데 알고보니 북성동 주민사치센터(동사무소)라고한다. 야경까지 찍을 수 있어 행운이었다.

 
 
 
 

자유공원을 향하는 곳 이곳 저곳 차이나 타운과 주변 거리를 둘러보면 이렇게 역사적인 명소를 마주하곤 한다. 인천개항박물관으로 거듭난 인천개항장의 근대유산, 일본 제1은행자리, 인천 개항의 역사를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는 곳이다.-(
http://www.icjgss.or.kr/open_port/index.asp)
대불호텔-한국 최초의 서양식 호텔인 대불호텔이 있던 자리엔 이렇게 안내판만 세워있다. 일본인 호리 리기카로가 지은 벽돌 3층의 ‘대불’호텔이 우리나라 최초의 호텔이다, 정확한 건립 연도는 불분명하나 1885년 인천에 발ㅇ르 디딘 아펜젤러 목사가 대불 호텔을 언급한 것으로 보면 그 이전에 이미 영업을 하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대불 호텔은 이후 중화루란 고급 중국 요릿집으로 바뀌었다가 현재는 건물이 헐린 채 빈터로 남아 있다.


  


 
 

청일 조계지 쉼터

청일 조계지 경계계단은 청국과 일본의 조계지 경계에 조성된 자유공원과 연결된 것으로 양쪽 나란히 서 있는 석등의 모양이 서로 다르다. 특히 청국 쪽의 석등은 직선을 많이 이용했고 일본 쪽은 곡선으로 부드러움이 많은 편이다. 청국 조계지 쪽으로 차이나 타운이 형성 되었고  개항 후 조선에 들어온 청나라(중국)사람들의 거류지로 1884년 지어진 청국영사관을 비롯, 당시의 건물들이 아직까지 많이 남아있어 당시의 모습을 짐작하게 한다. 최초의 자장면 집으로 유명한 공화춘 역시 이곳 차이나타운에 자리 잡고 있다.

일본 조계지는 개항이후 인천에 들어온 각 나라들은 자신들의 거류지를 넓히기 위한 세력다툼이 치열했다. 가장 먼저 인천에 들어온 일본은 7000여 평의 가장 큰 지계를 소유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계확장에 열을 올렸다한다.



 
 
 
 
 삼국지 벽화 거리
청일 조계지 계단을 올라가서 밑으로 난 길 양쪽의 벽면에는 삼국지의 중요 장면을 설명과 함께 타일로 제작하여 장식한 벽화가 나온다. 삼국지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그림으로써 남에게 설명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총 80여컷의 장면이 있는데 차이나타운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의선당

인천 개항후 인천에 거주하는 중국인들이 늘어남에 따라 교화및 정신적 안녕을 기리는 중국식 사당인 "의선당(義善堂)"이 자장면 거리에 있다. 안에는 사후 안식을 기원하는 관음보살, 돈을 벌어준다는 관우상, 자식을 점지해준다는 삼신 할미상, 중국을 왕래할 때 뱃길의 안녕을 보살펴 주는 용왕상, 그리고 원행길이나 산길을 보호해 준다는 호산할아버지(산신령)의 다섯 분이 모셔져 있다.


 
 
 

 


한미수교100주년 기념 탑

8개의 탑은 인간, 자연, 평화, 자유를 상징한다고 한다. 이 탑의 설계는 건축가 강석원 선생님이 했고 탑 중앙의 조각 "움직임 그 100년" 은 조각가 최만린이 맡았다. 기념탑에 새겨진 안내문-한미수호통상조약은 1882년 5월 22일 대조선국 전권대관 신헌과 대미국 전권대신 로버트 윌슨 슈펠트와의 사이에 제물포 화도진 언덕에서 조인 체결하였다. 이 조약은 그로부터 전개되는 모든 한미 양국관계의 발전에 가장 기본적이며 역사적인 시발점이 되었다. 과거 100년 동안 한미 양국을 여러 내외 정세의 변화와 굴절에 대응하면서 정치, 외교, 경제, 군사, 문화에 걸쳐 양국간의 우호 친선과 공동의 이익을 위한 협력관계를 추후 유지해 왔고 발전시켜 왔다.

멀리서 보면 커다란 삼각형 기둥이 하늘로 향해 솟구쳐 있었다. 가까이 가면 커다란 공간 속에서 하늘을 향해 찌를 듯이 높게 세워진 탑 아래 그 아래서 느끼는 것은 전 세계인이 소망하는 평화와 자유를 느낄 수 있다.


 
 

 제물포 구락부
인천에 있던 외국인들의 사교모임인 제물포 구락부의 사교장으로 쓰기 위해 광무 5년(1901)에 지은 것이다. 1913년 일본제국 재향군인회 인천연합회 소속의 정방각으로 불리다가, 1943년 일본부인회관으로 사용하였다. 광복 이후로도 정치 변화에 따라 여러 용도로 쓰였는데, 1990년부터는 인천문화원으로 사용하고 있다. 2층 벽돌집으로 근대 개항 이후 복잡한 역사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는 호화스러운 건물이다



 
 

 
 
 
 

신포시장

우리는 신포시장의 닭강정을 먹으러 긴 거리를 걸어서 갔다. 시장 안에 가득히 찬 사람들. 줄을 서서 기다리는 모습에 닭강정의 유명세를 한층 더 느낄 수 있었고. 색색의 만두가 입맛을 돋우는데 우리 일행은 닭강정을 먹어 보았다. 바삭 아삭. 치킨 과자라고 표현해도 좋을 듯 했다.

신포시장의 역사
인천 개항 후 산동성에서 온 농부들이 종자를 가지고 인천에 와서 채소 재배를 하니 인천에 거주하는 외국인들과 한국 사람들에게 매우 인기가 좋았다. 당시 일본 조계지 옆 공터에 이들이 재배한 채소시장이 서면서 이곳은 급기야 채소전 거리로 바뀌고 만다. 해방이 되고 한국 전쟁을 거치며 이곳이 도심지역으로 바뀌다 보니 새로이 양품점, 음식점, 유흥시설이 들어서며 채소시장은 줄어들게 된다. 1970년대에 들며 화교 세력이 위축되고 부터 이곳은 인천에서 제일 유명한 번화가가 된다.

 
 
 
 
 
 
 

신포시장에서 신포 닭강정으로 저녁을 대신하고 인천역으로 향해서 걸어 오면서 본 야경. 무엇보다 북성동 자치센터의 화려한 외벽의 홍등에 불이 밝혀지자 새로운 모습으로 장관을 이뤘다.

페이스북에서 친구들과 즐거운 퀴즈 풀이-http://www.facebook.com/media/set/?set=a.171079259616600.45912.100001435810684

원본보기-http://homihomi.tistory.com/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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